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준석 기자 | 회색빛 하늘 아래 묵직한 철골 구조물이 강물 위에 서 있다. 수많은 세월과 역사의 굴곡을 버텨낸 이 다리는 바로 압록강 철교다. 한쪽은 중국 단둥丹東, 다른 한쪽은 북한 신의주新義州로 이어진다. 한때 열차가 달리고 인민들이 오가던 다리였지만, 지금은 절반만이 남아 있다.

강 건너편, 망원렌즈에 비친 북측 아파트 단지들은 정돈된 듯 보이지만 고요 속에 묘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강둑 아래로는 북한 군 초병이 보초를 서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얼어붙은 강물처럼 굳어 있고, 압록강은 여전히 말없이 두 체제를 나눈다.

철길, 그리고 김정은의 행로 이 철교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과거 김정일과 김정은이 북중 정상회담을 위해 오간 통로, 그리고 한반도의 정치 지형을 바꾼 ‘철의 외교 루트’이기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과거 이 다리를 통해 단둥으로 향했으며, 그 길을 따라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금 확인했다. 철길은 이제 멈춰 있지만, 그 길 위엔 여전히 평화와 대화의 바람이 흐르고 있다. 강물은 국경을 가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남과 북, 동과 서를 잇는 ‘청길靑吉’ 푸르고 복된 길을 꿈꾼다. 압록강,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다리로 단둥 쪽 강변은 활기차다. 강가를 따라 관광선이 오가고, 중국인 관광객들은 ‘압록강 단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그러나 강 중앙을 넘으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북측 강안은 적막하고, 도시의 색채는 흐릿하다. 그 경계 한가운데 서 있는 다리는 마치 “역사와 체제의 교차점”처럼 느껴진다. 압록강은 여전히 남북관계의 거울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다리가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통로”로 불릴 날이 오기를, 그날에는 ‘청길’이 진정한 외교의 이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