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정하 기자 | 103세의 아침은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한 사람이 붓을 든다. 1923년생 남상준 선생은 1961년 팔산 동지성 선생에게서 혁필을 사사한 뒤, 무려 60여 년 넘게 혁필가로 살아왔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혁필은 한글에 머물지 않는다. 한문을 넘고 영어까지 건너간다. 더 나아가, 대나무를 깎아 만든 죽필竹筆까지 후학들에게 전수한다.
죽필은 혁필보다도 더 희귀한 전통 기법이다. 나뭇가지를 짓이겨 만든 유필柳筆, 죽필竹筆, 갈필葛筆, 초필草筆 등은 중국 후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의 필법으로 기록된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이 죽필을 실제로 다루고 가르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문화재 없는 문화재, 혁필의 아이러니
손등에는 세월의 주름이 깊게 패였지만, 붓끝은 여전히 살아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쉬셔야지요." 그러나 그는 되묻는다. "누가 이 획을 이어 쓰겠습니까.“
혁필은 흔히 한글에 머문다. 하지만 그의 붓은 경계를 모른다. 한글을 지나 한문으로, 다시 영어로 획은 언어를 넘어 사유가 되고, 사유는 전통이 된다. 그 곁에는 이제 이름조차 잊혀 가는 죽필이 있다. 대나무의 숨결로 쓰는 글, 사라질 뻔한 기술이 한 노장의 손에서 오늘도 숨을 쉰다.
문화재란 무엇인가. 낡은 것에 붙이는 이름인가. 아니면 살아 전해지는 힘인가. 만약 후자라면, 지금 이 순간 붓을 들고 제자를 가르치는 이보다 더 분명한 답이 있을까.
남상준 선생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전승의 주체다. 노인정의 시간이 아니라, 미래의 시간을 산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오히려 누군가의 손을 잡아 끌어 올린다. 경험이란 이렇게 쓰일 때 비로소 가치가 된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증명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수명이 81세인 시대에, 그는 이미 평균을 20년 넘게 초과해 살아왔다. 그 긴 세월 동안 그가 선택한 것은 안락한 은퇴가 아니었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직장이 없다면 스스로 일터를 만들면 된다. 몸이 불편하다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세상이 변했다면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면 된다. 남상준 선생은 이 모든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한글 혁필, 한문 혁필, 그리고 영어 혁필까지. 가죽 붓으로 세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평생을 바쳐 갈고닦은 예술혼의 발현이다.
노인 대접이 소홀한 시대, 스스로 존엄을 세우다.
우리 사회는 노인을 어떻게 대우하는가. 솔직해지자. 노인정은 있지만 노인의 지혜를 경청하는 자리는 드물다. 경로석은 있지만 노인의 경험을 존중하는 문화는 부족하다. 우리는 노인들에게 '쉬라'고만 말할 뿐, '가르쳐달라'고는 요청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상준 선생은 다르다. 그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는다. 쉬어야 할 나이임을 알면서도, 후학들을 위해 손을 놓지 않는다. 그의 작업실에는 배움을 청하는 제자들이 찾아온다. 그들은 단순히 '혁필'이라는 기술을 배우러 오는 것이 아니다. 한 세기를 넘게 살아온 노장의 '삶의 자세'를 배우러 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인 대접이 소홀한 시대에 스스로 존엄을 세우는 방법이다. 동정이 아닌 존경을 받는 방법이다. 103세의 나이에도 '나는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증명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나이 들기 마련이다. 남상준 선생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나이 든다. 예외는 없다. 지금 30대인 사람도, 50대인 사람도, 70대인 사람도 결국 100세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노인정 평상에 앉아 세월을 한탄할까, 아니면 여전히 무언가를 창조하며 후대에 가치를 전할까. 남상준 선생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노년에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것이 문화재가 아니면 무엇이 문화재인가
문화재란 무엇인가. 오래된 건물인가. 낡은 도자기인가. 박물관 유리 케이스 안에 갇힌 유물인가. 아니다. 진정한 문화재는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기술이고, 맥이 끊기지 않고 흐르는 전통이며, 무엇보다 그것을 몸으로 체득한 '사람' 그 자체다.
남상준 선생은 바로 그 '살아있는 문화재'다. 1923년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견뎌냈고,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으며, 1977년 미국까지 건너가 혁필을 알렸고, 2026년 현재까지도 후학들에게 그 맥을 전하고 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무형문화재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정부는 침묵한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종목에조차 혁필화가 지정되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비주류 전통예술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필요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하지만, 제도는 움직이지 않는다.
왜인가. 혁필이 '장바닥 문화'라서인가. 대중적이라서, 서민적이라서, 고상하지 않다고 여겨서인가. 그렇다면 묻고 싶다. 궁궐 안에서만 태어난 예술만이 문화재인가. 민초들의 삶 속에서 피어난 예술은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가.
명맥을 이어가는 손, 놓아서는 안 될 손
남상준 선생의 손은 떨린다. 103세의 손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 떨리는 손으로 쓴 혁필은 여전히 아름답다. 한 획 한 획에 담긴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백 년을 넘게 살아온 삶의 무게다.
그 손이 멈추는 순간, 혁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죽필도 함께 사라진다. 한글과 한문과 영어를 아우르는 혁필의 세계도, 대나무 한 대로 만들어내는 죽필의 신비도, 모두 박물관 유리 케이스 안의 유물이 되어버린다.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지금 당장 남상준 선생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그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그가 아직 가르칠 수 있는 동안, 우리는 서둘러야 한다.

문화재 지정, 명예가 아닌 책임이다.
무형문화재 지정은 단순히 한 사람에게 명예를 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그 문화를 지키겠다는 선언이며,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겠다는 약속이다.
혁필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전승 교육이 체계화된다. 후학 양성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예술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이것은 남상준 선생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103세의 노장이 여전히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기적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남상준 선생과 함께 천 년의 예술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
존재의 이유, 우리의 선택
우리는 종종 늦는다. 사라진 뒤에야 기록하고, 떠난 뒤에야 기린다. 그러나 전통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붙잡지 않으면, 지금 지정하지 않으면, 내일의 우리는 "왜 그때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남상준 선생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혁필과 죽필의 맥을 이어가는 것, 한글과 한문과 영어를 아우르는 예술의 보편성을 증명하는 것, 103세의 나이에도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문화를 외면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것인가.
혁필은 문화재가 되어야 한다. 죽필도 문화재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103세의 나이에도 후학들을 위해 손을 놓지 않는 남상준 선생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그가 살아있는 동안 그의 예술이 제대로 전승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요청이 아니다. 절규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103세의 손이 멈추기 전에, 천 년의 예술이 영영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존재의 이유는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인정해주는 것에서 완성된다. 남상준 선생은 이미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인정할 차례다.
가죽 붓 하나로 한 세기를 관통한 예술가, 대나무 한 대로 천 년의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 103세의 나이에도 후학들을 위해 손을 놓지 않는 스승.
남상준 선생, 그는 살아있는 문화재다. 그래서 그가 문화재가 되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