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하버드대 경제학자 Kenneth Rogoff는 저서 Our Dollar, Your Problem에서 1971년을 현대 통화질서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지목한다. 당시 미국 대통령 Richard Nixon은 달러의 금 태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했고, 미 재무장관은 항의하는 동맹국들 앞에서 “달러는 우리의 것이고, 문제는 당신들 몫”이라는 말을 남겼다.
로고프는 이 장면을 달러 패권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장기적 불안정의 씨앗으로 해석한다. 금본위제를 떠난 미국은 중앙은행 독립성과 제도적 신뢰를 통화 안정의 ‘마지막 앵커’로 삼았지만, 오늘날 그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달러의 초과지배(super-dominance)는 단순한 GDP 순위의 결과가 아니다. 로고프는 세 가지 구조적 요인을 강조한다.
- 첫째, 압도적 금융 인프라다. 글로벌 외환 거래의 상당수는 여전히 ‘자국 통화 → 달러 → 상대국 통화’의 이중 구조를 따른다. 깊은 유동성과 표준화된 결제망이 달러를 세계 금융의 허브로 고착시켰다.
- 둘째, 군사·제재 권력의 결합이다. 달러 결제망을 장악한 미국은 글로벌 거래의 ‘백오피스’를 통제하며 제재와 금융 압박을 실행한다. 이는 통화가 곧 지정학적 도구가 되는 구조다.
- 셋째, 아시아의 달러 편입, 특히 중국의 환율 앵커링이었다. 2000년대 이후 중국과 아시아 다수 국가가 달러 블록에 편입되며 달러의 시장점유율은 역사적 정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로고프는 2015년을 달러 지배력의 정점으로 본다. 이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과거 80% 수준에서 현재 60% 이하로 내려왔고, 이는 일시적 변동이 아닌 구조적 분산의 시작이라는 평가다.
AI, 디지털 화폐, 암호자산은 변수일 뿐이다. 로고프가 꼽는 핵심 리스크는 미·중 전략 경쟁을 축으로 한 지정학적 분열이다. 달러가 제재와 감시의 수단으로 활용될수록, 중국과 유럽은 자체 결제망과 지역 통화 생태계를 구축하며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이는 효율성의 후퇴를 감수하더라도 주권과 안보를 우선하는 선택이다. 통화 질서는 단극에서 다극으로 이동 중이며, 이 전환은 느리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로고프의 판단이다.
로고프는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이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상시화, 금리·환율 변동성 확대, 금융위기 빈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금본위제 이후 통화 신뢰의 핵심이었던 제도적 앵커가 약화될 경우, 달러의 ‘프리미엄’은 자연스럽게 축소된다.
또 하나는 폭주하는 국가부채다. 미국 부채는 이미 37조 달러를 넘어섰다. 달러 수요가 감소하면 국채 금리는 상승하고, 이는 재정 악화를 가속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로고프는 향후 수년 내 부분적 디폴트 또는 인플레이션적 채무 조정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는다.
로고프의 결론은 명확하다. 달러는 단번에 교체되지 않는다. 대신 점진적 점유율 하락과 함께 지역 통화들이 역할을 나눠 갖는 다극 체제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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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글로벌 기축 지위 유지하되 비중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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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재무장과 정치적 결속 강화 시 반등 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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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에서 지역 통화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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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자산: 지하경제·탈세 영역 중심으로 점진적 침투
즉, 단극 패권에서 다극 경쟁으로의 전환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대해 로고프는 냉정한 평가를하고 있다.
그의 정책 처방은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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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무역 의존도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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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 다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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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파트너 재설계
그는 현재 미국을 “예측 불가능한 파트너”로 규정하며, 경제 민족주의의 구조적 확산을 지적한다. 이는 특정 지도자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의 흐름이며, 단기간에 되돌릴 수 없다는 평가다. 한국은 동맹을 유지하되, 생존 전략 차원의 분산을 병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달러의 시대는 끝났는가?" 에 대한 로고프의 답은 절제되어 있다.
달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절대적 지배도 지속되지 않는다.
세계는 이미 통화 다극화, 금융 블록화, 경제 안보화의 단계로 진입했다. 한국 역시 이 변화 속에서 ‘동맹 중심 성장 전략’에서 ‘분산형 리스크 관리 외교·경제 전략’으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달러의 문제는 더 이상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모든 국가의 전략 과제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 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참조] 케네스 로고프는 누구인가: ‘위기 예측가’이자 달러 질서의 내부 비판자
Kenneth Rogoff 는 세계 금융위기와 국가부채 문제를 가장 정밀하게 연구해 온 거시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1~2003년에는 International Monetary Fund(IMF) 수석 이코노미스트(Chief Economist)를 역임했다. 국제 통화 시스템 내부를 직접 경험한 드문 학자라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단순 학술 분석을 넘어 정책 실무 경험이 결합된 경고로 평가된다.
로고프는 특히 다음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 국가 부채 위기
- 금융 붕괴의 구조적 원인
- 중앙은행 독립성과 통화 신뢰
- 글로벌 자본 이동
그의 대표 저서 This Time Is Different(카르멘 라인하트와 공저)는 800년간의 금융위기 데이터를 분석해 “위기는 항상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는 통찰을 제시하며 각국 중앙은행과 재무당국의 필독서가 되었다.
로고프가 전통적인 “달러는 영원하다”는 미국 주류 경제학의 낙관론에서 벗어나, 다극 통화 체제로의 점진적 이동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IMF 출신 미국 경제학자가 공개적으로 달러 패권의 쇠퇴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외교적으로 보면, 로고프는 현재의 통화 변화를 단순한 금융 현상이 아니라, 국제 권력 구조 재편의 초기 단계단계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분석은 곧, 앞으로의 통화 질서가 경제 논리보다 안보·동맹·기술 블록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