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동향) ‘비확산’ 원칙 내세운 외교부의 중동 전략

  • 등록 2026.03.06 00: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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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확산 체제 지지"… 압박 속 韓 외교의 전략적 응답
- 육로·항공 넘나드는 긴박한 대피 작전… 신속대응팀 급파
- 호르무즈 봉쇄로 현실화된 경제 위기… 엇갈리는 대북 시각
- 위기 속 공공외교 전개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중동의 전운이 서울 한복판의 치열한 외교 공방전으로 옮겨붙었다. 5일 주한 이란대사이스라엘대사가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여론전을 펼친 가운데, “한국이 침묵하면 전쟁에 동의하는 것”이라는 이란의 압박과 “제1차 북핵 위기의 교훈을 얻었다”는 이스라엘의 정당성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같은 날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당장 발등의 불로 떨어진 중동 지역 내 대규모 재외국민 철수 작전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경제안보 위기 상황을 설명했으며, 외교부는 직접적인 논평을 피한 채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라는 단 한 줄의 정제된 수사를 내놓았다.

 

이날 오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한 이란대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움직임을 '불법적 무력 사용'으로 규정하며 한국의 역할을 강하게 촉구했다. 반면 주한 이스라엘대사는 이란 핵 시설 타격 필요성을 역설하며 과거 북한의 핵 개발을 초기에 저지하지 못한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타국 대사의 발언에 대한 직접적인 논평을 삼가면서도,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란을 직접 자극해 닥쳐올 보복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이란의 핵 능력을 억제하려는 한미동맹의 핵심 기조에는 동의한다는 우회적 메시지다. 무엇보다 북핵 위협의 직접적인 당사국으로서 ‘비확산 체제’라는 원칙을 지켜내야만 향후 국제사회를 향해 대북 제재와 억지력을 호소할 수 있다는 현실적 딜레마가 깔려 있다.

 

이러한 외교전 이면에서는 당장 중동 각지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을 구출하기 위한 긴박한 '엑소더스'가 진행되고 있다. 박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5일 기준으로 파악된 우리 국민의 피해는 없으나 전방위적인 영사 조력이 가동 중이라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이스라엘·이란·이라크: 이스라엘에서는 지난 화요일 66명이 성공적으로 대피한 데 이어 추가 대피 희망자 4명이 이집트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란에서는 24명이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대피한 후 전날 1명이 추가로 무사히 국경을 넘었다. 이라크에서도 최근 2명을 지원한 데 이어 3명의 튀르키예 대피를 돕고 있다.

  • 바레인·쿠웨이트 (육로 대피): 주바레인대사관은 대사관저를 개방해 20명을 수용했고, 13명에게 임차 버스를 제공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대피시켰다. 쿠웨이트 역시 임산부 1명과 1세 유아를 포함한 13명이 영사 동행하에 임차 버스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로 육로 이동을 추진 중이다.

  • 아랍에미리트(UAE): 약 2,000명 이상의 단기 여행객과 출장자가 발이 묶인 UAE의 경우 상황이 더욱 엄중하다. 정부는 전세기 및 군용기 투입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며, 중동 지역 및 영사국 근무 경험이 있는 대사급 2명을 단장으로 한 '외교부·경찰청 합동 신속대응팀'을 이날 밤 두바이와 오만에 급파하기로 했다.

 

중동의 위기는 단순한 지정학적 갈등을 넘어 한국의 직접적인 경제안보 위기로 직결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국내 정유사 원유 운반선 7척이 고립된 사실이 재확인됐다. 박 대변인은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관련 대응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현실과 외교부의 인식 사이에 미묘한 간극도 노출됐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이 이번 사태를 겪으며 대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고 전망한 것과 달리, 북한은 최근 관영매체를 통해 해군 핵무장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박 대변인은 이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포기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 공존을 위한 대화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는 긴박한 사태 속에서도 중동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도 병행한다. 조현 장관은 오는 10일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 외교단 등 180여 명을 초청해 제20차 이프타르(Iftar) 만찬개최하며 이슬람권과의 연대와 친교를 다질 예정이다.

 

재외국민 보호, 에너지 공급망 교란, 북핵 딜레마, 그리고 상대국의 여론전까지 얽힌 이번 중동 사태는 국가 생존이 걸린 복합 위기 상황이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거창한 조직 개편 논의에 앞서, 외교부와 해수부, 산업부 등 유관 부처들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원팀(One-Team)으로 움직이는 '실질적인 경제안보 공조 체계'의 가동이 절실하다. 총성 없는 외교전과 실물 경제의 위협이 동시에 닥친 지금, 우리 정부의 신속하고 입체적인 대응 역량이 진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외신 동향 ] "글로벌 대리전쟁터 된 서울..  주요 외신이 본 韓 외교의 딜레마

 

로이터(Reuters)서방의 주요 언론들은 이란 대사가 "침묵은 전쟁 동의"라며 한국을 압박한 행보를 두고, 미국의 핵심 동맹국을 상대로 한 전형적인 '고립 탈피 및 동맹망 흔들기' 시도로 분석했다. 특히 한국 외교부가 이란을 직접 규탄하는 대신 '국제 비확산 체제 지지'라는 우회적인 방패를 꺼내 든 것에 주목하며, 확전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띠고 있다고 타전했다.

 

블룸버그(Bloomberg)를 비롯한 주요 경제 매체들은 대사들의 여론전보다 당장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한국 원유 운반선 7척의 상황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한국이 이란을 향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다름 아닌 '에너지 공급망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냉철하게 지적했다. 원유 수입이라는 경제적 명줄이 잡혀 있는 구조적 한계가 한국의 외교적 운신 폭을 극도로 좁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알자지라(Al Jazeera)중동권 매체들은 이스라엘 대사가 이란 핵 타격의 정당성을 역설하며 '제1차 북핵 위기의 교훈'을 언급한 점을 매우 흥미롭게 조명했다. 이는 한국이 가진 고유의 안보 트라우마를 교묘하게 자극하여 자국 군사 작전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치밀한 심리전이라는 것이다. 아시아 여론을 선점하려는 이란과 안보 프레임을 덧씌우려는 이스라엘의 언론전이 서울에서 정면충돌했다고 묘사했다.

이길주 기자 aromaes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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