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총회.. 역사적인 ‘노예제 배상 결의안’ 통과

  • 등록 2026.03.29 1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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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의 ‘기권’은 무언의 패배인가? 123대 3의 압도적 표결이 던지는 경고장
- ‘침묵의 기권’에 숨겨진 서방의 공포
- 한국은 찬성
- UN 뉴스: “배상은 시혜가 아닌 정당한 권리”
- ‘비동맹’에서 ‘블록’으로… 글로벌 사우스의 실력 행사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지난 3월 25일(현지시간) UN 총회장을 가득 채운 박수 소리는 국제 질서의 거대한 균열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대서양 노예 무역에 대한 ‘배상 정의(Reparatory Justice)’를 촉구하는 결의안찬성 123표라는 압도적 지지로 통과된 순간, 서구 중심의 외교 문법은 유효기간이 다했음을 드러냈다. 미국,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등 단 3개국만이 반대표를 던졌고, 유럽연합(EU)을 포함한 주요 서방 국가들은 ‘기권’이라는 궁색한 외교적 후퇴를 택했다.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쇠사슬에 묶인 채 신대륙으로 끌려가 채찍질에 시달리며 목화밭, 설탕밭, 커피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기본적인 인간성조차 박탈당하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그들은  여러 세대에 걸친 착취를 견뎌야 했으며,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결의안은 "아프리카인 노예 매매와 인종차별적 아프리카인 노예화는  세계 역사에 있어 결정적인  단절을 초래하고, 규모와 지속 기간, 체계적인 성격, 잔혹성, 그리고 인종차별적 노동, 재산, 자본 체제를 통해 모든 사람의 삶을 구조화하는 지속적인 결과 때문에 인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범죄"라고 강조한다.

 

과거 국제무대에서 서방 국가들은 자신들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결의안을 조직적으로 부결시키거나 수정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영국의 《더 가디언(The Guardian)》 은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서방이 더 이상 자신들만의 논리로 정의를 독점할 수 없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며, “기권표를 던진 국가들은 도덕적 부채에 대한 법적 책임이 천문학적인 배상금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법률 전문지 《주리스트(JURIST)》 역시 이번 기권표를 ‘법적 방어막’으로 규정했다. 이번 결의안이 향후 국제사법재판소(ICJ) 등에서 실제 배상 청구의 강력한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서방의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UN의 공식 매체인 《유엔뉴스(UN News)》는 이번 결의안이 갖는 역사적 무게감을 상세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이번 결의안 채택을 지지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대서양 노예 무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장 중 하나이며, 그 유산은 오늘날의 인종차별과 불평등 속에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배상 정의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왜곡된 현재의 국제 질서를 바로잡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특히 유엔뉴스는 이번 결의안이 2026년부터 2035년까지를 ‘노예제 배상 및 아프리카 유산 행동을 위한 10년’으로 지정한 점에 주목했다. 이는 단순한 사과를 넘어 교육, 보건, 기술 전수 등 구체적인 형태의 배상을 서방 국가들에 압박하는 장기적인 로드맵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번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것은 아프리카 연합(AU)카리브 공동체(CARICOM)였다. 이들은 더 이상 서방의 원조를 기다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공급망과 자원을 무기로 삼은 ‘협상가’로서 실력을 행사했다.

 

UN 전문 독립 매체 《패스블루(PassBlue)》는 “더 이상 서방의 동의가 국제 규범 제정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글로벌 사우스와 결집하며 서방을 고립시킨 전략적 구도는, 이제 국제 사회의 ‘캐스팅보트’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번 결의안 통과는 한국 외교에 있어 전략적 노선 수정을 요구하는 변곡점될 수 있다. 서방 국가들이 ‘역사적 책임’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사이, 한국은 자신만의 독특한 위치를 활용해 글로벌 사우스와의 결속을 다질 결정적 기회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 식민 지배의 아픔을 공유하는 ‘유일한 선진국’: 한국은 서방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피식민 지배의 역사를 극복하고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다. 이번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한국의 행보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한국은 우리의 역사적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파트너”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 공급망 안보와 실리 외교의 결합: 핵심 광물의 보고인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제 단순한 원조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십’을 원한다. 한국은 이번 결의안 지지를 바탕으로 ‘한국의 공여’ 모델을 단순 자금 지원에서 기술 전수 및 현지 산업화 지원으로 고도화하여, 글로벌 사우스의 ‘배상 정의’ 요구에 실무적으로 화답할 수 있게 되었다.

  • 글로벌 중추국가(GPS)로서의 중재자 역할: 미국과 유럽이 기권하며 고립된 상황에서, 한국은 G7과 글로벌 사우스 사이를 잇는 ‘브릿지(Bridge) 국가’로서 최적의 적임자다. 서방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글로벌 사우스의 특수성을 대변하는 중재 외교는 한국의 국제적 발언권을 강화하는 핵심 동력이 될 전망이다.

 

이제 노예제 배상은 과거사 정리의 영역을 넘어섰다. 도덕적 부채는 이제 ‘갚아야 할 영수증’이 되어 돌아왔고, 이를 결제할 의지도 능력도 부족한 서방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랐다. 정의의 기준점이 서구의 법 체계에서 피해 당사자들의 ‘회복적 정의’로 이동하는 거대한 전환점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주요 외신이 본 UN 총회 ‘노예제 결의안’…법·정치·질서 재편까지

 

  • The Guardian (영국)
    “도덕적 유감을 넘어 법적 현실로”
    과거 ‘유감 표명’ 수준에 머물렀던 접근에서 벗어나, 노예제를 ‘인류에 대한 가장 중대한 범죄’로 명문화한 점에 주목했다. 특히 영국의 기권에 대해, 과거 제국주의 유산이 초래할 수 있는 막대한 배상 책임에 대한 부담이 반영된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 JURIST (법률 전문지)
    “기권표는 서방의 법적 방어막인가”
    서방 52개국의 집단 기권을 법률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이번 결의안이 향후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등 국제 사법 절차에서 배상 청구의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PassBlue (UN 전문 매체)
    “서방 없이도 작동하는 국제 규범”
    이번 결의가 서방의 지지 없이도 채택된 점을 강조하며, 국제 규범 형성에서 서방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글로벌 사우스와 연대해 서방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구도를 부각했다.
  • African Union (공식 입장)
    “배상의 10년, 행동의 시작”
    결의안 채택을 아프리카 국가들의 집단적 외교 성과로 규정하며, 이를 단순한 역사 청산을 넘어 기후 금융, 부채 탕감 등 구조적 불평등 해소 의제와 연계하겠다는 전략적 방향을 제시했다.

 

 

이길주 기자 aromaes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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