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서안지구의 한 팔레스타인 주민은 이재명 대통령의 SNS 메시지를 두고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고 표현했다. 이 짧은 발언은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지금의 논쟁은 단순히 한 국가 지도자의 SNS 활용 방식이나 소통 형식의 적절성을 둘러싼 기술적 공방이 아니다. 오히려 ‘침묵이 일상화된 국제사회’ 속에서, 오랜 기간 외면받아 온 이들의 고통과 존재를 공개적으로 호명한 행위가 갖는 의미를 둘러싼 근본적 질문에 가깝다.
결국 이번 사안은 정치적 수사나 외교적 관례를 넘어, 보편적 인류애에 대한 응답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해석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평가된다.
이스라엘 외교당국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 SNS 메시지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공개 항의를 제기했다. 특히 이스라엘 외교부는 공식 입장을 통해 해당 발언의 문제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우리 외교부도 공식 입장을 냈다. 외교부는 11일 오전 공식 SNS를 통해 “이스라엘 외교부가 대통령께서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념을 표명한 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이를 반박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측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 첫째, ‘역사적 모독’이라는 비판이다. 이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홀로코스트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비유한 데 대해, 유대인 집단학살의 비극성을 희석시키는 부적절한 비교이자 역사적 기억을 훼손하는 발언이라고 규정했다.
- 둘째, ‘정보 왜곡’ 문제 제기다. 대통령이 공유한 영상이 과거 사건을 현재 상황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허위 정보(Disinformation)에 해당하며, 해당 콘텐츠를 생산·유포한 계정 역시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 셋째, ‘선택적 침묵’에 대한 비판이다. 이스라엘 측은 한국 정부가 하마스의 무력 공격과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으면서,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만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입장은 단순한 외교적 유감 표명을 넘어, 한국 정부의 중동 정책 기조와 발언의 국제적 파장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로 해석된다.
명분과 ‘확인된 사실’의 충돌
그러나 이스라엘 측의 항의는 국제사회가 이미 확인한 구체적 사실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제한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유한 영상은 2024년 9월 서안지구 카바티야에서 촬영된 것으로, 이스라엘 방위군(IDF) 병력이 팔레스타인인의 시신을 건물 옥상에서 투척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해당 영상은 BBC,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을 통해 사실관계가 확인된 바 있으며, 미국 백악관 역시 이를 두고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영상의 촬영 시점이 수개월 전이라는 점과 별개로, 해당 장면이 보여주는 행위의 성격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라는 점에서, 단순한 시점 논란으로 본질이 희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외교부가 영상의 출처나 계정을 문제 삼는 대응은, 영상 속 행위 자체에 대한 책임 규명보다는 논점을 분산시키는 수사적 대응에 가깝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누가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외면하는가”… 이스라엘 내부 지성들의 반론
홀로코스트와의 비교가 부적절하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항의와는 달리, 이스라엘 및 국제 학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지성들은 현재의 군사적 상황을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교훈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오메르 바르토프 브라운대 석좌교수는 홀로코스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최근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집단학살(Genocide)의 범주로 규정하며 강도 높은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인류가 홀로코스트를 통해 도출한 핵심 교훈인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현재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아모스 골드버그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 역시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직시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도 고통스러웠음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태도야말로 역사적 비극에 대한 진정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발언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비교가 단순히 홀로코스트를 경시하거나 격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 비극적 역사로부터 도출된 보편적 교훈이 현재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묻는 문제 제기라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실익’보다 앞선 ‘보편적 인권’… 한국 외교의 방향성 주목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간인 학살과 강제 동원 등 구조적 폭력을 경험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집단적 기억은 국제 분쟁 상황에서 인권 문제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전통적인 외교적 실익 중심 접근을 넘어, 보편적 가치와 인권을 강조하는 이른바 ‘가치 외교’의 사례로 평가된다. 외교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인권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한국 외교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한편 국제사법재판소(ICJ)와 유엔 산하 조사기구들은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과 관련해 집단학살 여부 및 국제법 위반 가능성을 둘러싼 판단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국제적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의 공개 발언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국제사회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외교적 실익과 전략적 침묵을 중시하는 기존 접근과 달리, 인권과 규범을 강조하는 발언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이번 사안은 국가 간 이해관계를 넘어, 외교에서 가치와 원칙이 어느 수준까지 반영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