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김태연 외교부 출입 기자 | 국가 간 공동의 합의점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국제사회에서 중앙아시아는 폭넓은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한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5월 중요한 정치적 진전이 있었다. 유엔총회(UNGA)가 ‘중앙아시아 지역의 평화·안정 및 지속가능한 발전 보장을 위한 지역 및 국제협력 강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이번 구상은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2025년 9월 역사적인 제80차 유엔총회 일반토의에서 제안했다.
특히 이번 결의안은 표결 없이 컨센서스로 채택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자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관철하기보다 다양한 국가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구상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폭넓은 연대를 형성해 나가는 우즈베키스탄 외교의 특징을 보여준다.
결의안에는 세계 여러 지역을 대표하는 66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중앙아시아 5개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독일, 브라질, 튀르키예, 대한민국 등도 포함됐다. 지정학적 분열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합의는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서로 다른 외교적 지향점을 가진 국가들 사이에서도 중앙아시아의 지역협력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5개 국가’에서 하나의 연결된 지역으로
결의안의 내용은 단순히 지역 안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넘어 이미 형성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지역 의제를 반영한다.
경제통합과 연결성 확대, 사람·상품·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 산업협력, 중소기업 간 교류 등이 주요 과제로 자리 잡았다.
이번 문서는 최근 중앙아시아에서 나타난 새로운 정치적 현실을 국제적 차원에서 명확히 보여준다. 중앙아시아가 주로 양자관계로 연결된 5개 국가의 집합에서 벗어나, 공동의 접근법을 마련하고 국제무대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보다 긴밀한 지역체제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중앙아시아는 5개 독립국으로 구성된 지리적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며, 하나의 뚜렷한 정치적 지역으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국가 간에는 해결되지 않은 국경 문제가 남아 있었고 교통 연결망도 제한적이었다. 역내 교역 규모는 작았으며 상호 신뢰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각국은 주로 외부 파트너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역 의제를 형성했고, 중앙아시아 자체의 다자협력 체제는 사실상 미비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정상 협의체에서 다층적 지역협력 체제로
2017년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제안한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 자문회의(Consultative Meetings of the Heads of State of Central Asia)는 외부 중재자 없이 역내 공동 현안을 논의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정상 자문회의는 단순한 정상 간 정치대화에 머물지 않았다.
관련 부처 장관회의와 경제포럼을 비롯해 전문가 교류, 기업인과 의회 간 협력, 여성·청년 교류, 산업협력 및 지방정부 간 교류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지역협력 구조가 점차 형성됐다.
이어 다자협력체제 내 협력 개념, ‘중앙아시아 2040’ 지역협력 구상, 지역 안보·안정 개념 등 새로운 협력수단과 전략문서도 마련됐다.
경제적 기반 역시 변화했다. 유라시아개발은행에 따르면 중앙아시아 지역경제는 2025년 약 7% 성장했으며, 5개국 간 상호 교역은 123억 달러로 2016년의 거의 4배 수준에 이르렀다. 중앙아시아 전체 경제 규모는 2026년 처음으로 6,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질적인 변화다. 중앙아시아의 연결성이 정치적 차원을 넘어 경제적 연결성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갈등 요인이 새로운 협력 기반으로
과거 긴장을 불러왔던 문제들도 이제는 협력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의 주요 국경 문제가 해결됐으며 교통망도 복원됐다. 사람과 상품의 이동 역시 확대됐다.
오랫동안 지역 현안의 주요 난제로 꼽혔던 수자원·에너지 분야에서도 공동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다시 말해 중앙아시아는 제한적인 상호작용의 단계에서 지속가능한 상호의존의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2018년 우즈베키스탄의 주도로 유엔총회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평화·안정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지역 및 국제협력 강화’ 결의안을 컨센서스로 채택했다.
그리고 8년 뒤 새로운 결의안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지역협력과 경제통합에 더욱 초점이 맞춰졌다.
두 문서의 차이는 지난 8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의제가 얼마나 크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2018년 국제사회에 요구된 것은 보다 안정적인 중앙아시아를 건설하는 과정에 대한 지지였다. 그러나 2026년에는 충분한 상호 신뢰를 구축한 국가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보다 심화된 협력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 의제가 됐다.
8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의제는 ‘안정(Stability)’에서 ‘연결(Connectivity)’로 이동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새로운 역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새로운 역할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지역정책을 국가전략의 외부적 부가 요소가 아니라 국가발전 전략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가 자체의 역량이 성장하는 동시에 주변 국가의 기회도 확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중앙아시아가 더욱 안정되고, 역내 교역 규모가 커지며, 교통망이 촘촘해질수록 국제관계에서 중앙아시아 전체의 중요성 역시 높아진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강하고 통합돼 있으며 경제적으로 상호 연결되고 개방적이며 안정적인 중앙아시아는 모든 파트너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우즈베키스탄의 국가적 이익이 중앙아시아 전체의 발전 및 안정과 점차 긴밀하게 연결되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역협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 자체가 최종 목표는 아니다.
다음 단계는 지금까지 축적된 정치적 신뢰를 지속가능한 경제적 상호의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교역 3.5배 증가…교통망도 빠르게 연결
이를 위한 기반은 이미 마련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 간 교역액은 2016년 24억 달러에서 2025년 83억 달러로 약 3.5배 증가했다. 역내 파트너 국가의 자본이 참여한 기업도 2,000개를 넘어 6배 이상 늘었다.
교통 연결성 역시 확대되고 있다.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철도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카스피해 횡단 운송로와의 연결도 확대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관통하는 트랜스아프간 회랑(Trans-Afghan Corridor) 역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중앙아시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동서와 남북의 주요 시장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할 기회를 확보하는 동시에 역내 연결망을 더 넓은 유라시아 공급망의 일부로 발전시키고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내부의 연결성이 강화될수록 외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기회도 함께 확대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역내 연결성은 더 큰 교통·무역·생산 네트워크에 편입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유엔에서 확인된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위상
5월 20일 채택된 결의안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그 의미는 단순히 지역협력에 대한 외교적 인정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자체적인 정치대화 메커니즘과 전략문서, 실질적인 협력수단을 구축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 차원의 움직임이 이제 유엔총회에서 폭넓은 국제적 지지를 얻게 됐다.
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스스로 지역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제시해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즈베키스탄에도 새로운 외교적 공간이 열리고 있다.
유엔에서 중앙아시아의 지역 의제를 발전시키는 것, 주변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 경제적 연결성을 높이는 것이 하나의 전략적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즉, 주변 지역을 함께 강화함으로써 우즈베키스탄 자체의 국제적 위상도 높이는 전략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실질적인 결과로 정착시키는 데 있다. 역내 교역 확대, 공동 생산 프로젝트, 교통 연결성 강화, 에너지 협력, 그리고 국민 간 교류 확대가 그 핵심이다.
중앙아시아는 이제 단순히 안정이 필요한 지역에서 벗어나 스스로 연결되고 협력하며 국제사회에서 공동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지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안정에서 연결로.’ 지난 8년간 중앙아시아가 걸어온 변화의 방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