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김태연 외교부 출입 기자 | 우즈베키스탄과 대한민국의 관계가 새로운 발전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 양국 관계의 기반이 교역과 투자, 설비 공급이었다면 이제 협력의 중심은 보다 심화된 산업·기술협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공동 생산 및 기술 가치사슬 구축, 첨단 제조업의 현지화, 핵심광물의 고도 가공, 인적자원 개발 등이 양국 협력의 핵심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양국의 장기적인 국가 발전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은 원자재 공급원을 다변화하고 공급망의 안정성을 높이고자 한다.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국내 자원 가공 확대와 첨단기술 도입, 자국 내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 증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양국의 목표가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은 기존의 투자 중심 협력을 넘어 포괄적인 산업·기술 파트너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2025년 교역 약 18억 달러…한국 투자 누적 100억 달러 넘어
2025년 양국 교역 규모는 약 18억 달러를 기록했다. 2026년 8월 양국 정부는 가까운 시일 내 연간 교역액을 40억 달러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공동 실무그룹을 구성했다.
투자협력은 더욱 큰 규모로 발전했다. 우즈베키스탄 경제에 유치된 한국의 누적 투자액은 1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 가운데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약 80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 자본이 참여한 기업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9년 359개였던 한국 자본 참여 기업은 현재 약 1,000개로 확대됐다.
그동안 축적된 투자 기반은 여러 대형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약 40억 달러 규모의 우즈코르 가스 케미컬(Uz-Kor Gas Chemical) 합작사업이다. 양국 관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로, 이 기업은 내수와 수출을 위한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상업용 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역시 양국 협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아와 협력하는 ADM Jizzakh 공장은 반조립(SKD) 방식으로 다양한 차량을 생산하고 있으며, UzAuto Components 계열 기업들은 UzAuto Motors 차량에 사용되는 에어컨 시스템과 좌석, 프레스 부품, 플라스틱 부품 등을 생산한다.
섬유 분야에서는 페르가나와 부하라 지역의 포스코인터내셔널 관련 기업들이 면섬유를 가공해 고품질 원사와 직물을 유럽과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다.
제약산업에서도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타슈켄트 파마파크(Tashkent Pharma Park)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투자자이자 기술 제공자로 참여해 국제 우수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에 부합하는 의약품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협력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개별 투자사업을 넘어 양국 기업 간 지속 가능한 생산 연계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고 있다.
왜 한–우즈벡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가
산업·기술협력이 심화되는 배경에는 세계 경제환경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무역 제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인해 각국에서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전자·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한국의 주력산업은 안정적인 원자재와 소재·부품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전자제품 제조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도 약 13~15%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경제협력 파트너를 확대하고 원자재와 가공소재, 부품의 공급 기반을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면서 산업 현대화를 추진하는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이제 외국인 투자를 단순히 ‘얼마나 많이 유치하는가’보다 어떤 기술적 효과를 창출하는가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
새로운 생산시설 구축과 국내 가공 확대, 수출역량 강화, 전문인력 양성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원 확보 필요성과 우즈베키스탄의 고도 가공산업 육성 전략이 맞물리면서 핵심광물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원자재 거래에서 ‘공동 가치사슬’ 구축으로
우즈베키스탄은 구리와 텅스텐, 리튬, 몰리브덴, 아연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자원은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한국에도 중요한 원료 기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의 목표는 단순히 원자재 수출량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자국 내에서 단계적으로 가공 수준을 높여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유망한 협력모델은 자원 채굴→가공→중간재 생산→산업적 활용을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이를 통해 전략 원자재의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공급망 회복력을 높일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국내 가공산업을 확대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면서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높일 수 있다.
특히 기술 공정의 일부 단계를 우즈베키스탄 현지에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현지에서 수행하는 생산공정이 많아질수록 산업과 고용, 자국 전문인력 양성에 미치는 효과도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원자재와 설비 공급에 기반했던 전통적인 협력모델이 양국이 공동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협력모델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금융·인적자원 결합
생산 가치사슬 구축에는 투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술과 장기금융, 전문인력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의 결합은 한–우즈베키스탄 산업협력의 가장 큰 강점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미 협력 확대를 위한 금융·제도적 기반도 구축되고 있다.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한 우즈베키스탄 대상 차관 지원 한도는 20억 달러로 확대됐으며, 관련 재원은 디지털화와 보건의료, 교육, 인프라 등의 사업에 활용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역시 우즈베키스탄 은행에 제공하는 신용공여를 통해 한국산 산업설비 도입을 지원하고 있다. 수출신용보험도 공동사업을 위한 금융 조달에 기여하고 있다.
기술협력 역시 확대되고 있다.
2026년 8월 양국은 AI와 디지털 전환 분야의 협력을 한층 강화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지원 아래 디지털정부, 데이터 표준화, AI 솔루션 도입 분야의 협력이 추진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러한 협력은 개별 산업의 디지털화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생산데이터 표준화와 자동화, 인공지능 도입은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현대적인 스마트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 인재가 기술협력의 기반
인적자원 개발 역시 핵심적인 협력 분야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운영되는 한국계 대학과 교육기관들은 미래 산업에 필요한 엔지니어와 IT 전문가,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 분야 협력은 한국의 고용허가제(EPS)를 통한 우즈베키스탄 전문인력의 한국 취업과도 연결된다. 한국의 산업·조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우즈베키스탄 인력들은 실무능력을 습득하고 현대적인 생산방식과 산업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이 제도의 의미는 단순한 노동 이동을 넘어설 수 있다. 한국에서 습득한 기술과 경험이 향후 우즈베키스탄 산업현장으로 다시 연결된다면 산업 노하우와 전문지식을 이전하는 통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과 기술, 인적자원 개발이 결합되면서 양국의 산업협력을 한 단계 더 심화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고 있다.
양자협력에서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으로
한–우즈베키스탄 협력을 한국과 중앙아시아 전체의 협력구도와 연계하면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2026년 9월 서울에서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이 참여하는 첫 정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새로운 정상급 협력체계는 중앙아시아를 산업·기술·자원 협력의 유망한 지역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즈베키스탄에도 새로운 기회다. 우즈베키스탄은 상당한 규모의 내수시장과 인구 잠재력, 풍부한 자원, 성장하는 산업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기업 및 금융기관과 장기간 축적해 온 협력 경험도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이러한 요소를 종합하면 우즈베키스탄은 향후 한국의 중앙아시아 산업·기술협력을 연결하는 핵심 플랫폼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
생산 가치사슬 구축과 기술 현지화, 전문인력 양성이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면 한–우즈베키스탄 협력은 중앙아시아에서 ‘투자 파트너십에서 산업·기술협력으로 전환하는 대표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필자 | 드미트리 트로스티얀스키(Dmitry Trostyansky),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산하 전략지역연구소(ISRS) 수석연구위원·경제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