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21세기 국제정치에서 중동은 다시 세계 질서를 흔드는 최대 화약고로 부상하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 위험, 홍해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 고조는 국제 안보 체제 전반에 중대한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 갈등은 유대교와 이슬람, 그리고 미국 복음주의 세력이 얽힌 ‘문명·종교 충돌’처럼 보인다. 실제로 각국 지도자와 무장 세력은 성서와 꾸란, 성지(聖地), 종말론적 언어를 적극 활용하며 전쟁의 정당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외교·안보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현대 중동 분쟁의 핵심 동인은 종교 자체라기보다 영토, 안보, 체제 유지, 역내 패권 경쟁이라는 세속적 이해관계에 훨씬 가깝다. 종교는 갈등의 본질이라기보다 대중 동원과 정치적 정당화의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성전’이 아닌 영토와 생존의 문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둘러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흔히 유대교와 이슬람 간 충돌로 묘사된다. 그러나 분쟁의 본질은 동일한 영토를 둘러싼 두 민족의 주권 경쟁과 생존 문제에 가깝다.
이스라엘 우파 진영은 역사적·종교적 서사를 통해 안보 정책과 군사 행동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역시 알아크사 사원 수호와 성지 방어를 내세워 아랍·이슬람권의 지지를 결집시키고 있다.
하지만 갈등의 구조적 배경에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자리한다.
-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와 이른바 ‘나크바(Nakba·대재앙)’의 역사
-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
- 장기 봉쇄 속에서 심화된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
- 물·토지·이동권 등 기본 자원을 둘러싼 통제와 충돌
특히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 과거 세속 민족주의 중심의 PLO에서 이슬람주의 기반의 하마스로 이동한 현상 역시, 종교 자체보다는 장기적 점령과 갈등 구조 속에서 급진적 조직이 더 강한 동원력을 확보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이란 충돌: 종교 대립보다 ‘역내 패권 경쟁’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 역시 단순한 유대교-시아파 대립 구도로 환원하기 어렵다. 양국 충돌의 핵심에는 중동 질서를 둘러싼 전략적 패권 경쟁이 존재한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 예멘 후티 반군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구축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란은 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완충지대로 인식한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과 친이란 무장 네트워크를 자국 안보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선제 억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종교적 언어는 체제 결속과 대외 명분 확보에 활용되지만, 실제 정책 결정은 국가 안보와 세력 균형 논리에 기반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전, 팔레비 왕조 시기의 이란과 이스라엘은 비공식 안보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에도 양국의 종교 정체성은 존재했지만, 전략적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에 협력이 가능했다는 점은 현재 갈등의 본질을 시사한다.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가치 동맹인가, 패권 전략인가
미국의 대이스라엘 정책 역시 종교적 연대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미국 내 친이스라엘 로비와 복음주의 보수층은 미국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는 대중 담론과 선거 정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특히 복음주의 진영 일부는 성서적 세계관 속에서 이스라엘 지원을 종교적 사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외교안보 전략의 핵심은 여전히 글로벌 패권 유지와 중동 질서 관리에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미국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은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 중동 내 가장 안정적인 친미 군사·정보 협력 거점
- 이란 및 반미 세력 확장을 견제하는 핵심 축
- 에너지 수송로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 유지의 전략 자산
- 러시아·중국과 연결되는 유라시아 세력 확대 차단의 전초기지
결국 미국의 중동 정책은 가치·종교·민주주의 담론과 함께, 냉혹한 지정학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종교전쟁’ 프레임이 가리는 것들
국제 분쟁에서 종교 프레임은 강력한 정치적 효과를 가진다. 지도자들은 이를 통해 전쟁을 단순한 영토 분쟁이나 안보 갈등이 아니라 ‘선과 악의 대결’로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닌 제거해야 할 절대적 적으로 규정되며, 군사 행동은 도덕적·종교적 의무로 포장된다. 전문가들이 현대 중동 분쟁을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중동 갈등을 이해할 때 종교적 수사 자체보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이해관계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오늘날 중동의 전쟁은 단순한 ‘문명의 충돌’이라기보다, 영토와 안보, 체제 생존, 자원 통제, 그리고 패권 경쟁이 종교적 언어를 통해 정당화되는 복합적 지정학의 산물에 가깝다.
그리고 국제사회와 언론이 직시해야 할 지점 역시 바로 그 지점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