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외교 안보] 모스크바의 경고, 서울의 선택…북·러 밀착이 흔드는 한반도 외교

- 러시아, 한국에 대북정책 전환 공개 압박
-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안보가 맞물린 새로운 외교 시험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러시아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정책 전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 모스크바가 한반도 문제에서 사실상 평양의 외교적 후견인 역할을 자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러 관계가 새로운 갈림길에 서고 있다.

 

최근 러시아 외무부는 한국 정부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원한다면 대북 압박과 제재 중심의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했다. 단순한 외교적 유감 표명을 넘어 한국의 대외정책 방향 자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이번 발언은 지난해 체결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 이후 양국 협력이 군사·안보는 물론 외교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신호로 해석된다. 국제사회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며 한반도 외교 지형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고 있다.

 

 

북·러 밀착이 만든 새로운 외교 구도

202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북·러 조약 체결은 동북아 안보 질서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양국은 정치·경제·군사 협력을 제도화하며 전략적 연대를 강화했고, 이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군사 협력 확대가 이어지면서 북·러 관계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서 북한의 군사적 지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동북아에서 미국 중심 안보체제에 대응할 전략적 공간을 넓히고 있다. 북한 역시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국제적 고립을 완화하고 경제·군사적 지원을 확보하는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북·러 협력은 일시적인 전술적 공조를 넘어 장기적인 전략 협력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변수'가 한·러 관계를 흔들다

러시아가 한국을 향해 연이어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는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모스크바는 그동안 한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협력 확대, 우크라이나 지원 가능성, 방산 협력 등을 예의주시해 왔다. 특히 러시아 외무부는 올해 초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에 나설 경우 "비대칭적 대응"을 포함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공개 경고한 바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 한국은 첨단 방위산업 역량을 갖춘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지원 수준은 전장의 변수일 뿐 아니라 러시아의 대외 전략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인식된다.

 

반대로 한국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한반도 안보를 직접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양국은 서로의 안보 우려를 핵심 이해관계로 인식하면서 전략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구조에 놓여 있다.

 

한국 외교의 '복합 방정식'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외교·안보 정책의 중심축으로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와 국제규범을 훼손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역시 한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은 경제·기술 협력과 동북아 외교 측면에서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된다. 이 때문에 양국 모두 공개적인 갈등을 이어가면서도 외교 채널은 유지하려는 '관리된 경쟁'의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다른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은 북·러 협력 강화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견제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고 보면서도, 한반도 긴장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고조되는 상황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북·러 협력의 수준과 방향이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 어떻게 조율될지도 동북아 안보 환경을 좌우할 중요한 요소가 될 전망이다.

 

한국 외교가 마주한 전략적 선택

이번 러시아의 공개 압박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한반도와 유럽 안보가 하나의 전략 공간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한미동맹, 북·러 군사협력은 이제 각각의 현안이 아니라 상호 연동되는 복합 안보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한국 외교가 직면한 과제는 분명하다. 자유민주주의와 국제규범, 동맹이라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러시아와의 외교적 소통 창구를 관리하고 불필요한 전략적 오판을 방지하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경고는 결국 서울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원칙과 실용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따라 한·러 관계는 물론, 향후 한반도 외교의 방향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