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물건은 조선에 남아야 한다”... 경계를 넘은 예술가, 아사카와 노리타카의 유산

  • 등록 2026.02.05 02: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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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조선의 미(美)를 발견하고 수호한 일본인 형제, 아사카와 노리타카와 다쿠미를 기리며
- “형은 도자기를, 동생은 산천을”... 형제의 지독한 조선 사랑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1946년,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 한 일본인의 품에는 그 흔한 골동품 하나 들려 있지 않았다. 33년간 조선의 산천을 누비며 수집한 수천 점의 도자기와 귀중한 연구 자료를 모두 한국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고 빈손으로 떠난 이, 그가 바로 ‘조선 도자기의 신’이라 불린 아사카와 노리타카(1884~1964)다.

 

 

1913년 소학교 교사로 조선 땅을 밟은 노리타카는 당시 일본 지식인들이 열광하던 화려한 고려청자 대신, 먼지 쌓인 고물상 구석의 ‘조선 백자 항아리’에 마음을 뺏겼다.

 

당시 일본 미학자들은 조선의 미를 ‘망국의 슬픔’이나 ‘비애’로 정의하려 했다. 하지만 노리타카의 시선은 달랐다. 그는 백자의 절제된 선에서 슬픔이 아닌 ‘건강한 생명력’을 보았다. 그는 조선의 도자기가 왕실의 권위보다 민중의 삶 속에서 피어난 자연스러운 예술임을 직감했고, 평생을 바쳐 전국의 가마터 700여 곳을 직접 발로 뛰며 조선 도자기 역사의 체계를 세웠다.

 

노리타카의 곁에는 그의 숭고한 뜻을 함께한 동생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가 있었다. 이 도자기의 ‘선(線)’에서 예술성을 찾았다면, 임업 시험소 직원이었던 동생 다쿠미는 조선의 민둥산을 푸르게 가꾸는 데 평생을 바쳤다.

 

두 형제는 식민지 지배층의 특권을 거부하고 조선의 말을 배우며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살았다. 다쿠미는 생전 “조선인처럼 먹고, 조선인처럼 입고, 조선인처럼 생각하라”며 스스로 조선의 일부가 되기를 자처했다. 1931년, 다쿠미가 40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그의 운구를 멘 이들은 일본 관료가 아닌 인근의 조선 상민들이었다. “조선의 흙이 되겠다”는 유언에 따라 그는 지금도 서울 망우리 언덕에 잠들어 있다.

 

노리타카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일본에서 국보로 대접받던 ‘이도 다완’이 사실 조선의 서민들이 밥그릇으로 쓰던 ‘막사발’임을 고증한 것이다. 이는 조선 공예가 가진 보편적이고 압도적인 미감이 일본 미학의 정점에 닿아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그는 정치가 대립하더라도 문화와 예술은 국가를 넘어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선의 물건은 조선의 땅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그의 신념은 1946년 기증이라는 실천으로 완성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해외 소재 문화재 환수 문제에 있어서도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 모범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서울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의 동생 다쿠미 묘소는 한일 양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가꾸는 ‘우호의 성지’가 되었다. 매년 그의 기일이면 한국과 일본의 추모객들이 모여 국화꽃을 헌화한다. 노리타카가 남긴 도자기들이 우리 박물관에서 조선의 자부심을 증명하고 있다면, 동생 다쿠미는 우리 산천의 흙이 되어 뿌리 내리고 있는 셈이다.

 

아사카와 형제가 남긴 유산은 단순히 유물이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의 문화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사랑하는 ‘경계 없는 존중’ 그 자체다. 그들이 발견한 백자의 흰 빛과 그들이 심은 푸른 나무는, 오늘날 우리가 이웃 나라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투명한 거울이 되어주고 있다.

 

 

형, 아사카와 노리타카 (조선 도자기의 신)

"조선의 물건은 조선의 땅에 있을 때 가장 가치가 있으며, 가장 아름답다." (1946년 귀국하며 평생 모은 유물을 한국에 기증할 때 남긴 말)

"조선인과 일본인의 진정한 친선은 정치나 정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진심으로 교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은 슬픔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자연스러운 생명력과 건강함에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비애의 미' 이론에 맞서 조선 예술의 본질적인 생동감을 강조하며)

"나는 조각가로서 조선을 보았고, 조선의 흙에서 인간 보편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동생, 아사카와 다쿠미 (조선의 산과 나무가 된 사람)

"나의 유해는 반드시 조선 땅에 묻어달라. 죽어서라도 조선의 흙이 되어 이 산하를 지키고 싶다." (죽음을 앞두고 남긴 유언)

"조선인처럼 먹고, 조선인처럼 입고, 조선인처럼 생각하라. 그래야만 비로소 조선의 아름다움이 보일 것이다."

"조선의 소반은 그저 가구가 아니라, 민중의 삶이 빚어낸 가장 정직한 예술품이다." (저서 『조선의 소반』 서문 중)

"일본인이 조선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우리는 조선의 예술과 자연으로부터 겸허함을 배워야 한다."

 

이길주 기자 aromaes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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