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부재정(政府財政)은 텅빈 곳간, 선거공약(選擧公約)은 묻지마 공약(空約)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경제학 박사 | 인간은 좋은 가르침이나 교육만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혹독하게 주입된 정보나 지식이 우리를 결코 참다운 인간으로 변모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은, 불행하게도 고학력 사회인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쉽게 확인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최근, 정치인들의 막말과 국민들에 대해서는 일단 말하고 보자는 식의 허언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이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는 명문대학 졸업과 대학이상의 고학력, 그리고 본인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그들의 인성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가톨릭에서는 지금이 예수님의 수난시기를 보내면서 그 아픔에 동참하는 시기인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순시기의 막바지인 성금요일 주님수난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갖은 조롱과 멸시를 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성서는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군중심리는 과격하고, 쉽게 동조하고, 일체화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을 참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누군가의 정직한 희생과 사랑일 것입니다.

 

인간의 성숙과 성장은 ‘주입’이 아닌 ‘발견’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굳이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하신 이유는, 죽음까지 넘어서는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제자들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공 생활 내내 그분의 가장 가까이에서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면서도 변하지 않았던 제자들은, 십자가의 온전한 사랑과 희생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의 흉한 몰골에 많은 이가 질겁하고,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의 처참함을 받아들이는 사랑, 우리의 병고와 고통을 짊어지는 사랑,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입을 열지 않는 사랑,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이들을 위하여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라고 기도하는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을 만날 때 비로소 인간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불행해하지 않게 됩니다. ‘완전한 사랑’으로 충만하여 지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 이루어졌다.”라는 성서 구절이 라틴 말로 “Cosummatum est!” (다 소모되었다, 완전히 소진되었다)인 것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소모적인 신비입니다.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조차 남기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다 써 버리는 것이 사랑의 정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2대 총선기간을 전후하여 “민생토론회”이라는 이름 하에 이 지역 저 지역에서 정책공약을 발표하였습니다. 투입되는 예산에 대한 뒷받침 없는 근거는 정책공약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허언입니다.

 

대파 한단에 875원이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하면서도 서민생계가 얼마나 어려움속에 있는지, 국민들의 아픔과 멀리 동떨어진 자세와 생각을 지닌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국민 사랑과 에산에 대한 세세한 계획이 결여된 민생토론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국민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더욱이 지방마다 수백조를 쏟아 부어야 하는 정책공약에 필요한 예산에 대한 설명도 하나 없는 공약(空約)이야 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대통령의 개인 생각과 행보나 다름이 없습니다.

 

실무자가 전해준 대파 한단이 875원이라는 사실은 얼마든지 잘못 전해 들을 수 있고, 본인이 잘 안다고 한  말 역시 자신을 강조하다가 잘못된 말이라는 사실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인정함으로 용서받고, 이해 받을 수 있는 일인데, 단 한 번도 국민에게 이해를 진심으로 구하지 않는 대통령의 모습이야 말로 참으로 옹졸하고 치졸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쌀독에 쌀이 있어야 우리는 밥을 지어먹을 수가 있습니다. 곳간이 비어 있는데 산해진미를 대접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공염불입니다. 

 

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야 모두가 한 목소리로 허언을 합창하고 있습니다. 쌀 농사를 어떻게 잘 짓겠다는 공약은 없고, 없는 쌀을 퍼주겠다는 말 잔치 홍수주의보가 전국에 발령되고 있습니다. 공식 선거기간 전후가 이러하니 본격적인 선거 기간이 시작된 3월 28일 이후 쏟아질 빈 공약의 홍수는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2024년도 우리나라 예산은 지난해보다 2.8% 늘어난 656조 9000억 원 규모로 운용되고 있는 중입니다. 2025년 예산은 올해 대비 4.2% 늘어난 약 684조 4000억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와중에 국세 감면 규모는 77.2조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올해 들어 대통령과 여야 선거대책을 책임지고 있는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이 밝힌 선심성 공약으로 의심되는 규모는 1,000조 원 규모를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매년 나라 살림을 위해 소요되는 세금과 지출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그 변통 폭 역시 크지도 않은데, 선거철만 되면 산더미 같은 예산을 등장시키는 출처불명의 도깨비 방망이가 언제나 등장합니다.

 

선거 때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그 이행여부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있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이번 21대 지역구 국회의원 251명(작년 12월 말 기준)을 대상으로 공약이행을 분석한 결과, 공약 이행률은 51.83%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재정이 필요한 공약 중 28.30%는 예산을 단 한 푼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재정은 정부예산으로 투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상황이기에 선거 때 내걸었던 공약은 모두 헛구호이고 표를 구걸하기 위한 말장난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지표가 되었습니다.

 

내년 예상되는 예산이 올해보다 겨우 4.2% 늘어난 27조원 규모 정도가 증액 예상인데 비해 지금 쏟아지고 있는 1,000조원 공약을 지키려면 수십 배의 세금을 더 걷고 투입해야 합니다. 그 세금은 기업과 국민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상황입니다만, 현 윤석열 정부는 감세를 기조로 하고 있어서 딱히 어디서 세금을 더 거둘 방안도 없는 상황입니다. 산업단지와 특구 조성을 외치고는 있지만 그 단지와 특구에 어느 기업을, 어떻게 유치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그 일자리를 통해 세수가 걷히는 선순환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난 2022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국빈 방문을 했을 때, 평택 미군기지에 내리자 마자 평택 삼성반도체 공장을 찾았습니다. 미국에 삼성의 투자를 요청하기 위해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먼저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에게 달려갔고, 이어 7월에는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 일행을 백악관으로 초청해서 미국 투자를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 중에도 화상면담을 추진할 정도로 미국내 반도체 법을 실현하는데 한국 반도체 기업 총수들을 만나 투자유치를 독려했습니다.

 

그의 삼성전자 방문과 SK하이닉스 백악관 초청 요청은 불과 2년 만에 대규모 대미 투자유치를 이끌어냈습니다.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대규모 보조금 지원을 추진하였습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국내에서 겪는 일은 기업의 참으로 한숨이 나옵니다. 국내 반도체 공장 확장을 위해 인·허가 등의 행정 처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만,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국회의원들은 그야말로 수년간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고, 기업은 투자 타이밍을 놓치는 안타까운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고는 합니다. 22대 총선만은 허언이 아닌 진정한 국리민복을 위한 선거공약이 넘치기를 바래 봅니다.

 

지난 26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내년 정부 예산의 재정지출을 10% 이상 감축해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그런 기조하에 '2025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확정했습니다. 내년도 나라 살림에 써야 할 재정 지출안은 올해보다 4.2% 늘어난 684조 4000억원입니다. 이중 국채를 발행해서 보충해야 할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72조 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미 법제화하였기에 재정지출부문은 늘어났지만, 국세를 포함한 수입세수는 줄어들었기 때문에 재정적자는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정부는 올해 국세 감면액을 77조1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해 국세 감면액 전망치(69조5000억원)보다 10.9% 늘어난 역대 최대치로 비과세, 세액감면 등을 통해 세금을 면제하거나 줄여준 결과입니다.

 

특히, 부자감세는 윤석열 정부의 공약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감세공약이 국민 대다수가 아닌 특정 고소득층에 해당한다는 점입니다.

 

서민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을 만큼 감세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지만, 부자들은 오히려 감세로 인해 부가 더 축적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개인 국세 감면액 중 고소득자 혜택 비중은 지난 2022년 31.7%에서 지난해 34%, 올해 33.4%로 2022년 보다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올해 예상된 기업 감면액 중 대기업 비중은 21.6%로 지난 2016년 24.7% 이후 8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56조4000억원의 세수가 줄어 국회에서 지출을 결의한 지출예산 중 45조7000억원이나 집행하지 못했습니다. 사상 최대 규모 세수부족사태는 올해도 불가피한 상황이고, 오히려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고집은 꺽이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완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확대 등을 살펴보면 돈 있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자는 '노골적 감세안'입니다. 사실 돈이 있어야 투자도 하고 세금도 냅니다. 소득이 발생하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는 게 맞지만, 세금감면 금융정책의 수혜자가 특정 부류에만 치중된다면, 공평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고 국가 재정수지의 적자 폭만 확대시킬 뿐이라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내년 예산집행의 기준을 각 부처에게 제시한 것을 보면 수정 변경이 어렵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내년 예산 중 법률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임의로 줄일 수 있는 예산인 '재량 지출'을 10% 이상 줄여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연구개발(R&D) 투자확대 등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재량 지출 피해는 결국 과학계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정부의 재량 지출 규모는 300조원 안팎에서 늘리거나 줄어드는 추세이며, 선거 공약에 따라 사회간접자본 등에 우선 배정하는 사안에 따라 증감하기도 합니다. 윤 대통령이 24회에 걸쳐 진행한 민생토론회를 보면 대부분 고속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시설을 포함한 다방면의 투자수요에 걸쳐 있습니다. 이런 약속을 지키려면 수백 조 원의 세수가 필요합니다. 세수는 거꾸로 감소하고 있는데 지켜야 할 공약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는 5월이면 취임 3년 차에 접어드는 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애초 제시한 공약에 빈틈은 없는지 다시 살펴야 합니다.

 

본인이 내세운 공약도 지키지 못하면서 이제 3년밖에 남지 않은 임기중 재정 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빈 공약을 더 이상 남발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이 내어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각국 정상을 만나고 파티에 참여해 술과 노래를 부르는 것이 대통령의 의무와 권리는 아닙니다.

 

기업들이 애써서 미리 만들어 놓은 계획에 FREE RIDER 해서도 안 됩니다.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은 치밀한 계획하에 실현 가능한 계획을 갖고 정부의 수반으로써 책임지고 실행함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성장하고, 국민 모두가 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에 있음을 절대 망각하여서는 안 됩니다.

 

탐관오리의 패악을 경계하는 이몽룡의 어사 출두장면에 나오는 한시(漢詩)를 21세기인 지금, 여기'에서 다시 거론하는 것은 참으로 우울한 일입니다. 자유롭고 풍요롭다고 자처하는 이 시대에 여야와 공직에 있는 공인들을 가렴주구로 대표되는 전제주의 시대의 탐관오리와 어찌 비교하지 않을 수 있겠는 가마는 국민의 마음속에는 자라나고 있고, 누군가를 응징하고 싶은 대구(對句)가 아닌가 싶어 적어봅니다.

 

금준미주천인혈 (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만성고 (玉盤佳肴萬姓膏)

촉루락시민루락 (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원성고 (歌聲高處怨聲高)

 

아름다운 술잔의 맛있는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 쟁반의 맛있는 고기들은 만백성의 기름이다. 촛물이   녹아 내릴 때 백성들의 눈물 또한 떨어지고, 노랫소리 가득한 곳에 백성들의 원망 소리 드높다.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국민들의 정서는 지금 드높습니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어느 정당의 캐치프레이즈가 국민정서에 반영되어 그 당의 지지율이 크게 오르는 현상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권의 안정을 바라는 일부 국민들도 있겠지만, 지난 2년동안 우리는 우리 국가의 신인도와 재정 건전성 등이 크게 악화되었고, 대한민국의 민주화 지수는 크게 하락하였으며, 2달째 지속되는 의정대립 또한 국민들의 피해는 자못 크다고 생각합니다. 선거를 위하여 급조된 정책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하며, 올바른 국민들의 한 표에 의하여 이번 총선에서 바르게 평가받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기회가 되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