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독만권서讀萬券書, 행만리로行萬里路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는 중국의 속담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서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문구입니다. 우리나라 육군교육사령부 도서관 앞에도 ‘행만리로(行萬里路) 독만권서(讀萬卷書) 교만인우(交萬人友)’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말은 싶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닌가 반문해 봅니다.

 

 

이 문구의 뜻은 ‘만리를 여행해 보고,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명의 친구를 사귀어 본다’는 뜻입니다. 만리를 여행하면서 이국의 풍물을 구경하다 보면 만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이지만, 여행전에 만권의 책을 읽어 현인들의 말과 글을 먼저 되새기게 된다면 세 가지를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독만권서(讀萬卷書)는 현재나 과거의 현인들로부터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받는 수단으로서 으뜸인 방법입니다. 현재나 과거와의 대화를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내 문제를 상담 받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방법입니다. 독만권서(讀萬卷書)의 대구(對句)가 행만리로(行萬里路)입니다. 즉, 만리를 여행해 보는 일입니다.

 

돈과 시간이 허락된다면 국내외 여행을 많이 해볼 일이겠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여행 역시 쉽지 않습니다.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인도의 성자 마하비라에 의해서 창시된 자이나교라는 종교가 있습니다. 자이나교의 의 방법론적인 가르침은 금욕입니다. 자이나교는 고행을 통해서 본래의 영혼을 되찾아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고행의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단식입니다.

 

음식남녀(飮食男女)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고, 남녀 관계에 대한 욕구보다 더 근원적인 욕구는 바로 음식에 대한 욕구입니다. 남녀가 잘 사귀다가 서로 헤어지는 것도 결국은 음식에 대한 욕구, 즉, 경제적 욕구에 기인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랑보다 더 경제적 현실을 택하는 시기가 되다보니 사랑하는 사이라도 점점 더 마찰이 있게되고,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한 다툼으로 헤어지게 되는 것이라 저는 봅니다.

 

자이나 교에서는 인간은 먹기 위해서, 자신의 배 속에 음식을 집어넣기 위해서 온갖 업(karma)을 쌓는다고 주장합니다. 섹스를 안 한다고 사람들이 죽는 것은 아니겠지만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에서 음식남녀(飮食男女)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가치는 "밥"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사기 치고, 뒤통수 때리고, 배신하고, 강탈하고, 심지어 연인끼리 헤어지는 이러한 모든 행위가 따지고 보면 먹자고 하는 행동일 테니까, 먹는 것을 끊음으로 모든 KARMA(業)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자이나교의 가르침입니다. 

 

단식은 아주 심플하나 그 고통은 대단합니다. 정치인들이 하는 단식은 자신의 뜻을 보여주기 위한 단식이 대부분이지만, 구 한말 일제에 항거한 지식인들의 단식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단식이었습니다. 지금도 안동 일대, 퇴계 후손들이 사는 동네로는 하계, 상계, 계남, 원촌 등이 있습니다.

 

구한말 단식으로 목숨을 버린 향산 이만도(1842-1910) 선생은 하계 출신이며, 이웃 원촌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항거한 시인 이육사(1904-1944) 선생이 태어난 곳입니다. 끊없는 배신과 장돌뱅이의 전성시대가 된 오늘, 퇴계 이황의 가르침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그 정신을 지킨 육사나 향산 같은 이가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행만리로(行萬里路)는 만 리를 여행해 보는 일입니다. 평창 생태마을은 운영하시는 가톨릭 수원교구의 황창연 신부님은 노년이 된 분들에게 자식을 위해 살지 말고, 자신을 위하여 살기를 당부하고, 가르치십니다. 먹고, 마시고, 여행하면서 노년을 즐겁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부모의 가열찬 도움으로 살아왔습니다.

 

성인이 된 사람들이 아직도 나이든 노년의 부모에게 의지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문에서 가끔씩 보게 되지만 부모의 재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쉽게 자녀들의 다툼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니, 황신부님의 말씀은 자녀간 다툼이 벌어지기 전에 써버리라는 말로도 이해가 됩니다.

 

신부님께서 다 쓰라고 하신 것은 자신을 위하여 다 소비하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여행을 통하여 새로움을 더 발견하여 기쁨을 찾고, 삶의 참 의미도 발견해 자신의 가족 너머 이웃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즉, 자신이 일군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도 함께 생각해 보라는 의미로서 신부님은 성지순례나 여행을 추천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의 재벌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가족만 알기 때문입니다. 분에 넘치는 돈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그릇되게 하고, 그 폐해를 그대로 본인과 가족들이 받게 됩니다.

 

독서를 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면 경치만 감상하다가 끝나는 수가 있습니다. 역사와 문화를 미리 익히고 떠나면 그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행하다 보면 낯선 환경과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의미 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여행중에는 낯선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지만, 나와 다르다는 차이를 느껴 가는 것과 그 차이를 인정해 가다 보면 시야가 넓어지고 피곤함이 해소되어 가기도 합니다. 여행중에 만나는 이들 중 배움을 주는 삶의 고수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쉽게 만나는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은 강단에서 만나게 되는 제도권에 노출된 분들입니다.

 

그러나, 여행중에 만나는 현자는 대부분 숨어 있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찾아가기 힘든 사찰에서 수행중인 스님이나 가톨릭수도원에서 수도하는 수도자들의 경우, 현자가 많으나 대부분 여행을 통해 일부러 찾아 뵙지 않는다면 결코 만나기 어려운 분들입니다.

 

중국의 유서 깊은 도교 문파중에 화산파라는 문파가 있습니다. 화산파의 수행목록중 하나가 표주(漂周)입니다. 표주는 3년간 돈 없이 천하를 여행해 보는 일입니다. 돈이나 신용카드의 도움 없이 빌어먹으면서 천하를 주유하라는 수행목록이 화산문파의 첫번째 가르침입니다.

 

돈이 없어야 세상을 바르게 알게 된다는 뜻으로, 세상사람들의 인심도 알게 되고, 그 지역의 특산물도 알게 되며, 어디가 명소인지도 알게 되고, 어떤 역사와 어떤 문화, 그리고 이들의 삶의 진짜 모습도 비로서 알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기업이나 천주교의 수도원인 프란치스꼬수도원(작은형제회),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일정한 거리와 기간을 무전여행을 통해 이웃에게 도움도 받고, 일을 거들어 주고, 밥을 얻어먹으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수도자는 일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이 이들의 삶이고, 기업은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 남아야 하는 의지를 갖추어 보려는 생각일 것입니다.   

 

천하를 주유하고, 만권의 책을 읽고, 만명의 사람을 사귀는 최종적인 가르침의 목표와 결과는 내면의 평화를 느끼는 것일겁니다. 예수님도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말씀하셨고, 히브리어로 우리가 만날 때와 헤어질 때에 샬롬(shalom)이라는 인사를 자주 하곤 하는데 샬롬 역시 "평화"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우리 내면에 평화가 존재하는 삶은 진정 복된 삶입니다. 그러나,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평화로운 삶에 도달하기 위하여는 시련을 겪어야만 합니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때로는 육체적인 자유를 구속당하는 시련을 겪어 보기도 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파산에 이르는 시련이나 이혼이라는 가정파괴의 시련도, 때로는 치료하기 힘든 불치의 병이라는 시련도 겪어봐야 합니다.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참된 인생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자신의 피와 땀과 눈물을 직접 흘려보지 않은 삶은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느낄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남의 경험이나 권리를 도적질 하듯 훔치는 자는 결코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알 수도 없고, 마수의 힘을 빌어 거짓된 삶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막막한 바다에서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하여 항해하고 있습니다. 막막한 바다에서 앞으로 나가기 위하여는 끊임없이 순례나 여행을 통하여 새로움을 만나고, 경험하고, 체득하여야 하며, 만권의 책이 가져다 주는 지식도 함양해야 합니다. 또한,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만나 필요한 정보와 배움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이 파 한단에 875원이라는 가격을 NH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 마트에서 보고를 받고, 자신이 시장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참으로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이야기를 했다가, 서민들이 구매하는 파 한단의 실제가격은 4천원 내외로 이와 크게 달라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실제 서민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과 경기하방의 체감을 알지 못한다는 조롱과 비판을 받게 되었고, 국민들로부터 큰 외면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는 대통령이라는 직분을 스스로 망각한데서 오는 결과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그들의 말에 귀 기울임으로서 타인에게 의존한 경직된 지식만을 대통령이 듣고, 말하고,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을 해 봅니다. 암행감찰이나 대통령 스스로 공부를 하는 방법도 있으련만 국민들의 아픔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은 데에서 오는 커다란 조롱거리가 되었고, 준엄한 민심은 국민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고, 할일도 없는 대통령, 하는 일마다 민심과는 동떨어진 일을 하는 대통령이라는 인식에 귀결될 만한 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서민들의 고통을 파악하기 위해 재래시장을 돌아 다니거나, 좀더 세심한 국민들의 삶을 경청하는 노력을 했다면 이런 우를 범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터입니다. 최근, 전국을 돌며 진행되고 있는 민생토론 역시 그 진정성이 인정된다면 지금의 불가역적 예산수요를 뺀 보여주기식 토론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국민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을수 있으리라 봅니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의 모든 공직자와 대통령은 근무지와 용산의 대통령실을 떠나 기업들의 생산현장과 수출현장을 점검하고, 서민들의 생계 어려움을 파악하여 이를 극복할수 있는 대안정책을 실행하면서 권만독서, 행만리로, 교만인우를 통해 더 많은 국민들을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자신과 가족들에게 발생한 각종 의혹에 대하여  더 크고 날카로운 칼을 스스로 들이대는 모습을 보인다면 현재의 낮은 지지율과 집권위기를 극복하고 보다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