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지정학이 다시 바다로 돌아오고 있다. 한국 정부가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추진하며 ‘해양수도’ 구상을 본격화한 배경에는 단순한 지역 균형 발전을 넘어, 국가 외교 전략의 중심축을 바다로 이동시키려는 장기 구상이 깔려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다시 한번 해양 접근권(sea access)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내륙국가인 에티오피아가 항구 확보를 둘러싸고 주변국과 갈등을 빚는 사례는, 바다를 잃는 순간 국가의 경제 주권과 안보가 얼마나 취약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전 세계 물동량의 80% 이상이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글로벌 데이터의 약 95%는 해저 케이블을 통해 이동한다. 바다는 단순한 물류 통로가 아니라 무역·에너지·디지털 인프라가 중첩된 전략 공간이다.
49개 내륙국가가 전 세계 GDP의 약 2%만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는, 해양 접근성이 곧 성장 잠재력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인 대표적 해양 국가이다.
특히 부산은 이미 세계 2위권 컨테이너 환적항을 기반으로 동북아 물류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해양수도’는 단순한 항만 확장이 아니다. 항만 기능에 산업, 금융, 연구, 인재, 도시 기능이 결합된 초광역 해양 경제권, 즉 ‘메가 마리타임 리전(Mega Maritime Region)’을 의미한다.
이 모델의 대표적 성공 사례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다.
로테르담은 단순 환적항을 넘어 에너지·석유화학·물류·금융이 결합된 유럽 최대 항만 경제권으로 성장했고, 항만이 국가 GDP의 약 3%를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핵심은 ‘통과하는 항구’가 아니라 ‘가치를 생산하는 항구’였다.
이런 맥락에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중앙부처 이전이 아니다. 이는 한국의 해양 정책 컨트롤타워를 수도권이 아닌 실제 해양 산업의 현장으로 옮기는 전략적 재배치다.
부산·울산·경남의 조선·기자재 산업, 여수의 석유화학, 포항의 철강, 그리고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이 결합되면, 한국 동남권은 이미 세계적 해양 산업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중앙 행정과 정책 결정 기능이 합류하면, 부산은 자연스럽게 동북아 해양 거버넌스 허브로 진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은 칠레와 함께 2028년 제4차 UN 해양총회를 공동 개최한다. 이는 한국이 단순한 무역 해양국을 넘어, 해양 규범·환경·지속가능성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해양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해양수도 구상은 경제 정책이면서 동시에 외교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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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태평양 해상 교역로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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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항만·물류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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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케이블과 디지털 해양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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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선박과 해양 에너지
이 모든 영역에서 부산은 한국 외교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 육지 중심의 외교에서 바다 중심의 외교(maritime diplomacy) 로 이동하는 것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더 이상 수사가 아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해양은 곧 생존 공간이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해양수도 구상은, 한국이 대륙의 변두리 국가에서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첫 제도적 발판이다. 항구 도시 부산이 해양수도로 진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을 진정한 ‘해양대국’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지금이 바로 그 분기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