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전쟁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네타냐후는 어떻게 트럼프를 전쟁터로 몰았나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2026년 3월, 이란 본토를 겨냥한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 작전이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다. 이번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지난 수십 년간 국제 핵 질서를 지탱해 온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의 종언을 고하고 있다. 오만, 워싱턴, 테헤란을 연결하는 외교 접촉과 정책 결정 과정을 토대로, 전쟁 발발 전 약 3주 동안 진행된 주요 외교·군사 움직임을 재구성했다. 2월 6일, 미국 무스카트에서의 최후통첩: “외교는 끝났다”전쟁의 서막은 오만 무스카트에서 열린 비공개 간접 협상에서 시작되었다. 미 측 특사 스티브 윗코프와 재러드 쿠슈너, 그리고 이란의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마주한 이 자리는 협상이 아닌 ‘최후통첩’의 현장이었다. 미국의 요구: 미국은 ‘우라늄 농축 제로(Zero Enrichment)’와 기존 비축분의 즉각적인 해외 반출을 요구하며 이란의 핵 주권을 사실상 부정했다. 이란의 거부: 아라그치 장관은 “NPT 제4조에 명시된 권리는 타협 대상이 아니다”라며 이를 정면 거부했다. 이란은 ‘19개의 평화적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