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도장장 정희성씨 "인장공예" 57년

- 1967년 인장공예에 입문했으니 올해까지 어언 57여년
- 반세기를 도장과 함께하며 살아왔다.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칠용 편집자문위원 | 한때는 인장공예는 물론 「금박공예」 분야까지 해서 소규모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서울 중구 삼일대로 장교빌딩 지하에서 조그마한 「도장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도장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일거리가 끊겨 요즈음은 궁궐 등 각종 기와집을 모형으로 만들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주변엔 모형 성곽, 소규모 궁궐 안의 이곳저곳 모습을 한 형상들이 그의 작업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손가락만 한 나무토막에 「이름」 석 자를 새기거나 조금 큰 사각 공간에 「낙관」을 남기는 사람들을 「도장 새기는 사람 또는 도장 파는 사람」으로 이야기한다. 

 

 

조각칼을 이용해 나무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장인을 「서각」과 「번각」으로 분류하는데 서각장은 국가무형문화재나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데 번각 장은 아예 무시당하고 있다. 

 

 「번각飜刻」 ?
사회에선 별로 사용하지 않은 용어며 이미 오래전에 쓰였던 아주 귀한 용어다. 우리는 흔히 고궁이나 사찰의 현판들을 보면 멋있고 의젓하게 써 붙여놓은 글씨나 그림 등을 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서각」이라고 한다. 「서각의 반대말쯤 되는 번각」이란 목판 인쇄물을 찍어내기 위해 글자를 반대로 파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도장 파는 데는 안성맞춤이지만 현판, 간판들을 거꾸로 만들 이유가 없으니 번각장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조선 말기 때만 해도 춘향전, 심청전, 박씨부인전 등 한글 소설들을 목판인쇄 기법으로 찍어냈으니 이때까지만 해도 「번각장」은 제대로 예우를 받았었다. 

 

 

그러나 인쇄기술에 밀리면서 이 분야도 끝이 났다. 도장업으로 겨우 의·식·주 해결을 했으니 이것마저 싸인, 서명 문화로 바뀌면서 즉 우리 민족 고유의 기술이 서양문화에 서서히 밀려나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건데 이때도 번각 장의 솜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희성 씨는 다리가 불편해 늘 휠체어를 이용한다. 항상 묵묵히 내조하며 도장방까지 함께 출퇴근해주는 아내가 그리도 고맙고 감사할 수 없다며 빙그레 웃는다. 

 

 

그의 뛰어난 솜씨는 일거리가 없을 때 두꺼운 종이를 가늘게 잘라서 붙이고 잘라내 만들어지는 고궁의 누각, 궁궐, 대궐집들이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장집을 해서는 도저히 그런 집에서 살아볼 수 없으니 대궐 모형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꿈속에서라도 그곳에서 의젓하게 번각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작은 꿈이요 소망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