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MDL·DMZ 권한 논쟁, 정전체제의 구조를 묻다

- ‘관리 주체’인가 ‘주권 문제’인가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최근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를 둘러싼 권한 논쟁이 다시 한반도 안보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UNC)가 최근 “MDL과 DMZ 관리·통제 권한은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에 있다”고 공개적으로 재확인하면서, 한국 정부의 DMZ 관리 방식과 충돌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행정 해석을 넘어, 정전체제 하에서 한국의 역할과 한계를 다시 묻는 구조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MDL과 DMZ, 무엇이 다른가

군사분계선(MDL)은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군사적 경계선으로, 남북 군대가 실질적으로 대치하는 기준선이다.
비무장지대(DMZ)는 MDL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2km씩 설정된 완충지대로, 군사시설과 무력 배치가 제한된 공간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 두 공간에 대한 관리·출입·조정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있다. UNC는 정전협정 제1조에 따라 MDL과 DMZ의 군사적·비군사적 출입 모두에 대해 승인 권한을 갖고 있다는 해석을 유지해 왔다.

 

유엔사의 입장: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UNC는 최근 성명을 통해
“MDL 및 DMZ 관련 모든 조정은 정전협정 체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는 한국이 DMZ 내 비군사적 접근이나 관리 규칙을 일부 조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사전 차단 성격을 띤 메시지로 해석된다.

UNC의 논리는 단순하다.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DMZ는 여전히 군사적 성격을 가진 정전 관리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민간 접근이나 평화 이용 역시 군사적 안정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간주된다.

 

한국 정부의 시각: “군사 통제와 민간 관리의 분리”

반면 한국 정부는 DMZ의 평화적·비군사적 이용 확대를 중장기 과제로 설정해 왔다. 통일·환경·관광 측면에서 DMZ 활용 논의가 확대되면서, “정전협정은 군사적 행위를 규율하는 협정이지, 모든 민간 활동까지 포괄하지는 않는다”는 해석이 제기돼 왔다.

정부 관계자들은 “정전협정을 존중하되, 한국 정부의 행정적·주권적 역할 역시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UNC의 공개적 권한 재확인은 이러한 해석에 제동을 거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쟁점의 본질: 관리권 논쟁인가, 주권 문제인가

이번 논쟁의 본질은 ‘누가 출입 허가를 내리느냐’가 아니다.
핵심은 정전체제 하에서 한국이 얼마나 자율적인 행위자(actor)로 인정받고 있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이다.

정전협정 체제는 남북 당사자가 아닌, UNC와 북한군(중국군 포함)을 축으로 설계됐다. 이 구조 속에서 한국은 사실상 주체가 아닌 관리 대상에 가까운 위치에 놓여 왔다.

전문가들은 “MDL·DMZ 권한 논쟁은 단기적으로는 행정 문제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전체제 전환 또는 평화체제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미동맹과의 민감한 변수

이번 사안은 미국과의 동맹 구조와도 직결된다.
UNC는 명목상 다국적 기구지만, 실질적 운영은 미국이 주도한다. 따라서 DMZ 권한 문제는 곧 한미 간 안보 조율의 민감한 영역으로 연결된다.

이번 논쟁은 한미 간 갈등이라기보다, 정전체제라는 오래된 틀과 한국의 변화된 위상 간 충돌이며 공개적 대립보다는 조용한 조율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전협정의 그늘에서 드러난 평화체제를 위한 현실

MDL과 DMZ 권한 논쟁은 한반도 안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한, DMZ는 완전한 주권 공간이 될 수 없고, 한국의 정책 선택 역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사안은 한국 사회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정전체제를 관리할 것인가? 전환을 준비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