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서울 잠실의 쿠팡 본사와 전국 수십 곳의 물류센터. 이곳은 단순히 물건이 오가는 유통의 현장이 아니라, 거대한 '데이터 판옵티콘(원형 감시 감옥)'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 최근 쿠팡을 둘러싼 블랙리스트 의혹, 알고리즘 조작, 그리고 3,000만 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누리는 당일 배송의 편리함은 과연 누구의 자유를 대가로 지불한 결과인가?
“3,370만 명 정보 유출”… 쿠팡, 편리함 뒤에 숨은 ‘디지털 빅브라더’ 논란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이 대규모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유출된 정보는 무려 3,37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규모다.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쿠팡이 축적해 온 방대한 데이터 권력과 관리 책임의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는 쿠팡의 ‘기술 기업’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쿠팡은 그간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을 앞세워 혁신 기업을 자임해 왔지만, 정작 핵심 자산인 개인정보 관리에서는 기본적인 통제조차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유출 사실을 수개월간 인지하지 못했거나, 뒤늦게 공개한 정황은 기업의 책임 의식을 의심케 한다.
빅브라더의 핵심 역량은 ‘진실의 재구성’에 있다. 쿠팡의 알고리즘 조작 논란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기업의 보이는 손에 의해 어떻게 뒤틀릴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편리함의 대가’로 축적된 데이터 권력
이번 사태를 단순 해킹 사고가 아닌 ‘데이터 독점 구조의 필연적 결과’로 인식되고 있다. 쿠팡은 구매 이력, 결제 정보, 배송 주소, 이용 패턴 등 국민 생활 전반을 관통하는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이는 공공기관에 준하는 정보 권력이지만, 관리 체계는 민간 기업의 자율에 맡겨져 있어 있었다.
이 지점에서 쿠팡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에 비유된다. 빅브라더는 모든 것을 보고 기록하지만, 감시의 주체는 책임지지 않는다. 쿠팡 역시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서는 방대한 정보를 독점·관리하면서도 유출에 대한 구조적 책임을 회피해 왔다는 것이다.
서구의 플랫폼 리버티즘(Platform Libertarianism)이 개인의 데이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데 치중했다면, 쿠팡의 사례는 데이터가 어떻게 직접적인 노동 통제와 사회적 배제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개인정보 유출, 신뢰 붕괴의 출발점
문제는 피해 규모만이 아니다.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사생활 침해를 넘어, 금융사기·보이스피싱·2차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연쇄 위험’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쿠팡의 초기 대응은 ‘자체 조사’와 ‘기술적 조치’ 강조에 치우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민단체들은 “이 정도 규모의 유출은 기업 내부 통제 실패이자 구조적 관리 부실”이라며,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플랫폼 기업의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입법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노동·소비자 감시 논란과 맞물린 구조적 위기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쿠팡을 둘러싼 기존 논란들과도 맞물린다. 물류센터 노동자에 대한 UPH(시간당 처리량) 기반 감시, CCTV 활용 논란, 알고리즘을 통한 소비자 선택 왜곡 의혹 등은 모두 ‘데이터를 통한 통제’라는 공통된 축을 갖는다.
즉, 쿠팡의 문제는 개별 사건이 아니라 감시·통제 중심의 플랫폼 운영 철학에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는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알고리즘이 설계한 환경 안에서만 움직이고, 노동자는 수치와 영상으로 관리된다. 그리고 그 방대한 데이터가 유출되는 순간,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전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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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블랙리스트' 의혹은 정보 권력이 개인의 생존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특정 사상이나 행동을 근거로 시스템에서 영구 격리하는 방식은 고전적 전체주의의 '기록 말살' 형벌이 알고리즘을 통해 재현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소비자와 시민을 ‘이해관계자’가 아닌 ‘데이터 원천’으로 보는 시각
쿠팡은 한국의 소비자와 시민을 설득하고 존중해야 할 주체로 대하기보다, 서비스 이용 약관과 알고리즘 속에 포함된 데이터 생산자이자 관리 대상으로 취급해 왔다는 인상을 준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설명이나 책임 있는 보상 논의보다, 기업 이미지 관리에 초점을 맞춘 대응이 반복됐다.
반면 미국의 정치·금융 시장에는 정교한 언어와 전략으로 접근한다. 이는 쿠팡이 어느 사회를 ‘파트너’로 보고, 어느 사회를 ‘시장’으로만 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다.
이는 쿠팡이 어떤 국가에는 로비로 대응하고, 어떤 사회에는 형식으로 대응해 왔는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플랫폼 기업의 국적이 아니라, 책임의 국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지금 쿠팡 앞에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