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2026년 1월 7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 각서(Presidential Memorandum)를 통해 66개 국제기구에서의 참여와 재정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공식 결정했다. 유엔 계열 31개, 비(非)유엔 기구 35개에 달하는 이번 조치는, 단순한 예산 조정이나 정책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외교 전략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탈퇴 명분으로 ‘국익과 주권 보호’, ‘비효율적이고 중복적인 국제기구 운영’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를 다자주의 질서에서의 전략적 후퇴이자, 양자주의·선별적 참여 외교의 본격화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유엔 체제를 중심으로 구축돼 온 기후변화, 보건, 인권, 개발 협력 구조에서 미국의 역할 축소는 곧바로 제도적 공백을 초래하고 있다.
한국 외교에 가해진 구조적 압력
이 변화는 한국 외교에 즉각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한국은 그간 다자체제의 ‘규칙 수용자’로서 안정적 외교 노선을 유지해 왔지만, 미국의 이탈은 한국을 규칙 유지자이자 조정자로 전면에 세우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국제기구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될수록, 한국은 발언권 확대와 함께 재정·정책적 책임 증가라는 이중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커진다.
한·미 동맹 차원에서도 미묘한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안보 영역에서 동맹은 유지되지만, 다자외교 현장에서는 미국이 빠진 자리를 한국이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맹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한국 외교가 과거보다 훨씬 정교한 ‘동맹 관리 외교’를 요구받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뜻한다.
미·중 경쟁, 이제는 ‘제도 외교’의 전선
미국의 후퇴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국제기구 내 영향력 확대 여지를 넓히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은 군사·통상 영역을 넘어 국제규범과 제도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한국은 이 전선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한국 외교의 과제는 명확하다. 특정 진영에 서는 문제가 아니라, 국제 질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완충국가(buffer state)’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는 외교적 위상 상승의 기회이자, 동시에 외교 역량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기도 하다.
이번 미국의 결정은 국제질서의 붕괴라기보다 재편의 신호에 가깝다. 다자주의가 약화되는 환경 속에서, 한국은 외교 전문성과 제도 조정 능력, 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의 신뢰가 한국 외교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