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의 공기를 뚫고 혜성처럼 나타난 소년이 있었다. 정식 미술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독학으로 붓을 잡았던 대구의 한 청년은 18세의 나이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선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6회 연속 특선과 최고상을 휩쓸며 일본 화단까지 전율케 했던 인물, 바로 ‘식민지 조선의 피카소’라 불린 화가 이인성(1912~1950)이다.
이인성은 서구의 인상주의를 한국적 정서로 완벽하게 바꾸어낸 선구자였다. 그는 폴 고갱의 원시적 색채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기법으로 조선의 산천을 그렸다. 특히 그의 작품 속에 흐르는 붉은 대지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 억압받는 식민지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과 조선 고유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의 대표작 <가을 어느 날>과 <경주의 산곡에서>는 당시 서구 미술의 조형미와 조선의 향토색이 결합한 절정의 미학을 보여준다. 평론가들은 그를 두고 "조선의 향토색을 세계적 수준으로 격상시킨 천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은 천재에게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서울 수복의 혼란 속에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11월 3일 밤,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이인성은 야간 통행금지를 단속하던 경찰과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
이 과정에서 그를 뒤쫓아온 경찰의 총탄이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시대의 거장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인 11월 4일 새벽,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허망하게 숨을 거두었다. 한국 미술의 새 지평을 열겠다던 그의 원대한 포부는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총성 한 발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요절한 거장의 작품들은 사후 여기저기 흩어져 유실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이인성의 천재성을 일찍이 알아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그의 작품들을 소중히 수집해 왔다.
2021년, 삼성 유족들이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에는 이인성의 작품 30여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사후 70여 년 만에 그의 연대기가 국보급 유산으로 완성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주요 언론들은 이를 두고 "국가도 놓쳤던 천재를 삼성이 지켜냈다"며 '근대 유화의 별'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을 환영했다.
이제 이인성의 예술혼은 박물관의 담장을 넘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유산이 되었다. 그의 강렬한 필치와 색채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의 채널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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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기념사업회 (leeinsung.com): 유족이 운영하는 공식 아카이브로, 시기별·주제별 대표작을 가장 상세히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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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MMCA) 홈페이지: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인 <다알리아>, <노란 옷을 입은 여인> 등을 고화질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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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아트 앤 컬처: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통해 이인성 특유의 섬세한 붓터치를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비극적인 총성으로 멈췄던 이인성의 시계는 이제 다시 흐르고 있다. 식민지 조선의 피카소가 붉은 흙 위에 새긴 뜨거운 예술혼은 오늘날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과 민족적 자부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