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

사월은 봄이다. 잔인한 봄이다.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2023년 1/4분기까지의 누적적자가 230억 달러로 역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고, 무역수지의 적자가 연속하여 13개월 동안 실현되어 그 실태가 자못 심각한 상황이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강원도지사의 설화로 인해 파생된 건설회사들의 위기와 전국적으로 미분양 부동산 물건들의 증가로 PF 부실화가 예상되므로서 금융권 부실화 역시 연쇄적으로 예상되는 잔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4월은 1960년 4월에 전국 학생을 비롯한 국민들이 이승만 자유당 정부의 독재와 부정부패,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벌인 민주 항쟁인 4.18 의거와 4.19 혁명이 일어나 절정에 달한 달이 였으며, 4월 26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하면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고, 제2공화국의 출범을 있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 된 달이기도 하다. 5.16 군사정변이 정변 이후, 이를 의거(義擧)로 규정하여 일반화되었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서 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려대학교 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하셨던 김상협 총장이 번역하여 당시 문교부에 의해 발간된 번역도서중 하나로 발간된 어니스트 바커의 “민주주의론”에는 민주주의는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소통과정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선이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는 없을 것이니 민주주의는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영원한 변혁의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이해하려면 시대를 관념적으로 파악하지 말고, 항상 그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체험을 정확하게 읽어 내야 한다. 나라 잃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이 분들보다 늦게 태어난 세대가 배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행동이고, 자신들이 마치 역사의 결론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 역시 현재 진행형인 역사연구를 오도하는 길이란 생각이 든다.
4.18과 4.19혁명 이후인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과정에서 발생한 유신체제나 장기군부독재의 시대에도 사월은 언제나 잔인했고, 이 잔인한 사월에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의 항거는 지속되었으며, 이 시기의 캠퍼스나 서울시내의 주요도로는 오랫동안 CS 연소 혼합물 또는 CS 분말로 충전된 화학 탄인 최루탄과 경찰봉으로 상징되는 무자비한 데모진압의 시기가 있었고, 공권력을 이용한 주동자 수배와 검거, 가혹행위가 늘 동반된 시기로 기억된다.
1975년 4월 11일,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한다. 들으라, 동지여! 우리의 숭고한 피를 흩뿌려 이 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할 용기를 그대들은 주저하고 있는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 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 합법을 가장한 유신 헌법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 헌법의 비민주적 허위성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 헌법의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고발한다는 내용의 양심선언문을 낭독한 뒤, 서울대 농대 김상진 군은 준비해 온 과도로 할복하고 만다.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그는 엠블런스에 실려 가며 애국가를 불러 달라고 하여 친구들이 불러준 애국가를 들으며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두번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은 운명하고 만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발전해 온 것이 아니고,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이 시기에 민주화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던졌던 다수의 사람들이 국회와 정부요직에 있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에 민주화를 위한 직접적 행동보다는 학업에 치중한 자들 역시 사법, 행정, 외무고시를 통하여 오늘의 권력 핵심보직에 이른 사람들도 다수다. 오늘날 정치권에서는 이 양대 세력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다. 윤석열 정부하에서 검찰과 관료중심의 통치구조는 더욱 비대해 졌고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볼 때 국민을 위한 충정은 이미 어긋난 지가 오래되었으며, 민주화 세력이라는 야권 역시 과거 자신이 민주화를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양심에 호소했던 그 시절의 순수성마저 잃어버린 채, 민주화세력이라는 방패를 이용하여 기득권 세력으로 부상한 수많은 정객들 역시 국민들로부터 지금 왜 자신들이 외면을 받는지 절실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김대중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다. 과연 이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이 행동하는 양심이라서 선의 편인지. 행동하지 않은 양심이라 악의 편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다.
200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시인 신동엽은 1930년 충남 부여태생으로 부여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전주사범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중퇴한후 단국대학교에 입학하여 사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안병선이라는 서울대에 1957년 입학하였다가 중퇴한 분과 결혼을 하였다. 안병선은 신동엽 시인을 위하여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 부여에서 양장점을 열어 생계를 꾸렸으며, 신동엽 시인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처음 등장하였다.
그가 남긴 시,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를 읽으며, 피해자를 배제하고, 애써 외면한 비굴한 한일정상회담과 다분화 되는 국제질서안에서 소위 미국과의 동맹만을 더욱 강조하는 단세포 적인 외교정책들을 지켜보며 현재 시점의 우리의 대외정책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다극중심의 경제정책 역시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만 남기를 기원해 본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