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
가정, 가족 그리고 출산…
가톨릭 전례력에 따르면 5월은 성모성월이다. 봄의 절정,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꽃" 성모님을 찬미하는 달이다. 성당마다 '성모의 밤', 성모 기도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영성적으로 성모님은 봄이 지닌 생명을 긍정하는 힘과 풍성한 생산력을 위한 상징으로 이해되며 봄의 여왕으로 공경 받아왔다.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띄우는 새벽과 같이 하느님 구원 작업의 시작에 서 있었으며 그래서 “구원의 봄”을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교 이전 봄의 풍습들, 이 시기에 수확하는 열매와 밭을 축복하는 축복 행렬과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청하는 기도들이 그리스도교화 된 것으로 보인다. 성모신심의 중심에는 'humus', 곧 땅과 밀접하게 가깝게 있는 humilitas, 즉, 겸손이 자리 잡고 있어서 역사의 흐름과 함께 5월 봄 축제에 이런 성모 신심의 특성이 더 깊이 새겨지면서 말씀의 대상만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과 연결해서 인지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더 분명하고 깊이 있게 성모님의 삶이 전례로 자리 잡았다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5월은 가정의 달로 지정하여 지내고 있고, 5월에는 특별히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 그리고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 날”이 지정되어 있는 달이기도 하다. 천주교 역시 5월을 “성모성월” 이라는 성모 신심의 지속적인 심화와 확대를 통하여 다양한 기도와 묵상, 꽃 장식과 행렬, 음악과 예술, 청원과 축복 등 다양한 풍습이 이루어져 왔는데, 일부 수도원들이 장려하기도 하였지만, 많은 부분이 하느님 백성 안에서 스스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산업화로 인한 인구이동과 노동조건으로 개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했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시기에 가장 깊은 뿌리를 내렸다.
가톨릭 교회는 우주적 구원의 중재자로서 마리아의 모습을 노래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적 구원자의 의미를 지니듯이 마리아는 우주적 구원의 중재자다. 그리고 세상 모든 당신 아드님의 지체들이 하느님의 창조를 찬미하는 천상 합창의 교향악에 모아 들인다. 14-15세기에 많이 그려진 망토를 펼치신 성모님과 같은 의미다. 누구라도 망토를 펼쳐 감싸면 자식으로 보호할 수 있었듯이 세상 모든 연령 모든 계층의 사람들 만이 아니라 주변의 자연까지도 당신 보호의 망토를 펼쳐 악에서 막아 주는 마리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인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죽음/ 그 죽음을 이긴 맑고 투명한 여종/ 이제 천상의 축복 여인의 형상에 깃들어/ 태초의 축복 여성의 본질에서 온다/ 한 처녀에게서/ 홀로 사랑받은 이 행복한 여인에게서/ 하느님 인간이 되셨기에” 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여성의 본질에 담긴 축복(Quia ergo femina)"이라는 이 노래처럼 이미 창조의 근원적 상태에서부터 모든 창조물을 품어 안으시려는 하느님 사랑의 뜻을 담아 주신 여성의 존재, 마리아의 응답으로 그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을 힐데가르트는 그 품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새벽으로 노래한다. 힐데가르트의 마리아론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에 응답해서 구세주를 세상에 오게 하셨던 성모 마리아로 인하여 모든 여성 안에서 '생명의 어머니'로 세우셨던, 에와의 과오로 잃었던 본질적인 축복,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하게 하는 여인의 본질에 담긴 축복이 되살아났다고 찬미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명을 담고 키우고, 생명을 향하고 이어주는 삶 안에서 펼쳐지는 그분의 축복이 존재함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가정의 사전적 의미는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공동체를 뜻하며, 가족이라 함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의미한다.
우리 인구정책의 기본은 바로 이 가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출산절벽에 서있다. 가정의 붕괴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보호받아야 할 가정은 정상가정과 한부모 가정 등 결손가정도 골고루 보호받아야 한다. 가정이라 하면 우리나라 부부가 결혼하여 2명이상의 자녀를 낳고 길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단 한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한의 인구절벽의 벼랑 끝에 서있다. 성모 마리아는 이러한 극한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하게 하는 여인의 본질에 담긴 축복을 기꺼이 수용하였으나, 우리나라 여성의 현실은 극한의 경계를 넘어 아무리 좋은 복지혜택을 개선하여 지원한다 하여도 생명 잉태와 출산, 양육의 문제, 그리고 사회에서의 경쟁의 문제는 출산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인구수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저 출산이다. 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수명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없으면 장기적 관점에서 인구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젊은 부부를 위한 지원제도를 획기적으로 제공한다 하여도 전통적으로 연금이나 의료보험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이미 한계가 극심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고, 정부가 거둬들이는 조세수입만으로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지원과 급속도로 노령화되고 있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인구를 감당할 길이 없다.
일본의 예를 살펴보면 단카이 세대로 지칭되는 1947-1948년 출생자, 당시 합계출산율 4.32가 동시에 정년 퇴임하면서 연금, 의료보험 등을 포함한 고령자 사회보장 예산이 급격히 증가했다. 우리나라 역시 6.25전후에 출생하고 경제성장기에 성장하고, 이제 정년 퇴임한 노령인구로 인해 사회복지예산이 증가하면서 연금지급연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8년 리먼브러더스 발 금융사태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미증유의 금융 및 자연재해 사고가 연이어 터져, 젊은 세대는 직업이 없는 비자발적 실업상태에 오랜 기간 머물렀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각국의 양적팽창 정책 실현으로 각국의 GDP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크게 오르게 되었다. 이 말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확보하고, 이 자금으로 주식시장에 개입하여 예산을 편성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전통적인 세금(소득세, 법인세, 소비세 등) 만으로는 예산편성이 불가능 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상황이 계속 이렇다면 저 출산 문제는 우리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고, 그와 비례하여 고령화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인 연금제도는 더 이상 성립할 수 없으리라 판단한다. 즉, 일하는 사람이 없는 데 누가 연금을 어떻게 낸다는 말인지 도무지 회의적이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정부는 감세정책을 펴고 있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증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정부는 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여 가뜩이나 부족한 세수를 더욱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지향하고 있으니, 수년내 그 폐혜는 국민에게 오롯이 전가될 것이며, 저출산 지원예산은 노령화 지원예산의 1/9정도 밖에 안되는 상황인 데도 더욱 지원할 예산은 축소되어 가게 될 것이므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저 출산의 문제에는 세대간 빈부격차도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 연금을 수령하는 65세 이상 고령자는 고도성장기, 버블의 수혜를 받은 부유층이다. 반면, 현재의 젊은 세대는 버블붕괴 이후 찾아온 취업 빙하기를 거쳐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가 대부분이다. 카공 족으로 대변되는 세대로 가장 빈곤한 세대가 가장 부유한 퇴직세대를 위해 연금을 납부하고 세금을 내며,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실정임을 감안함을 볼 때 퇴직자의 재취업, 그리고 젊은 세대의 실질소득 증가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자녀출산은 요원한 문제일 것이다.
또한 기업의 입장에서만 고려된 노동자의 동의 없는 노동시간의 연장은 대법원 판례에서도 위법하다 하였고, 주 최대 69시간으로 확대된 노동시간 개편안은 개악중의 개악이 될 것임이 자명하다.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노동개혁 역시 노사간의 대립을 부추기고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정책에 불과하다. 노동시장의 문제는 자발적으로 노사간 합의를 통하여 각 회사가 정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나, 이미 구조화되고 권력화 된 노동조합의 개선은 꼭 필요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이미 노인을 위한 나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즉, 노령화된 인구를 어떻게 산업화 일선으로 적정소득규모를 지급하면서 그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다양한 방법으로 취업일선에 복귀시키는 문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선거날만 되면 고령화 사회를 향하여 절취 부심하는 정치권의 득표전략도 출산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표를 가진 자에게 매달리는 정책은 젊은이를 위한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령인구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그들의 표를 얻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 젊은 세대들은 먹고 살기에 바빠 정치에 관심을 놓고, 휴일에도, 퇴근 후 집에서도 일을 한다. 가난하고 피곤한 젊은 세대가 무슨 출산을 위한 노력을 할까 싶다.
저 출산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며, 우리 후손의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력은 축소되고 희망찬 미래세대를 보장하기 어렵다. 가정, 가족 그리고 출산이라는 사회 최소단위가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많은 정책적 지원과 세대 간의 화합, 그리고 세대 간의 사회적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논설위원 이세훈(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