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칼럼] 개인전인가, 부스전인가..명칭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던지는 질문

- 전시의 형식이 예술가의 철학을 규정한다.
- 부스전의 현실: “나만의 부스는 곧 개인전?”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정하 기자 |  미술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걸어두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사유, 시대의 맥락, 사회와의 대화가 응축된 문화적 텍스트이자 실천의 장이다. 그 중에서도 ‘개인전’은 작가의 내면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전이란 말 그대로 전시 전체 공간을 한 작가가 기획하고 구성하는 전시로서, 주제의식, 작품 간의 유기성, 공간 배치까지 모두 작가와 기획자가 통합적으로 준비한 전시다. 따라서 개인전은 하나의 작품이 아닌 작가 전체의 세계관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서사적 공간이다.

 

하지만 최근 미술계에서는 부스전조차 ‘개인전’이라 홍보하거나 기록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단지 언어의 혼용을 넘어서, 작가 이력, 전시 평가, 예술 생태계의 구조 전반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문제다.

 

미술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개인전이란 말이 경력에 들어가야, 공모전이나 지원사업에서 눈에 띈다.” 작가들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 전시 명칭의 ‘미세한 왜곡’을 유도하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개최된 S아트페어에서 만난 A작가는 자신의 2평 남짓한 부스 전시를 SNS에 “A작가 제3회 개인전”이라 표기했다. 그러나 현장을 살펴보면 A작가는 수십 명의 작가 중 한 명으로서, 공동 임대한 전시장 내 부스 공간 일부를 할당받았을 뿐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연히 제 돈 내고 작품 전시했는데 왜 개인전이 아니죠? 요즘은 다 그렇게 합니다.”

 

이처럼 경제적 비용을 치렀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전시는 단지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예술적 기획과 철학의 발현이어야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예술지원사업, 그리고 예술인경력지원시스템에서조차 개인전과 부스전의 기준은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부 기관에서는 '단독 전시 여부'만으로 판단하거나, 실명 기재 여부로만 경력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결국 정직한 작가가 손해를 보는 구조를 낳는다. 전시실 전체를 6개월간 준비해 30점 이상을 전시한 개인전 작가와, 4점 전시한 부스전 작가가 똑같은 ‘개인전 1회’로 기록된다면, 이는 공정하지 않다.

 

예술 행정기관은 이제라도 전시 유형별 세분화된 등록 기준과 경력 인정 체계를 마련해야 하며, 작가 역시 정확한 용어 사용에 책임을 져야 한다.

 

예술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진정성이다. 전시가 개인이든 단체든, 그것이 명칭에 걸맞는 예술적 깊이와 독창성을 갖추고 있다면 관객은 감동한다. 그러나 형식만을 빌려 명칭을 부풀린다면, 결국은 작가 본인의 정체성조차 흐릿해질 뿐이다.

 

 

전시는 단지 벽에 그림을 거는 일이 아니라, 예술가의 정신을 펼치는 장이다. 그러므로 그 전시가 개인전이라면, 그것은 혼자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혼자만의 사유와 철학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여야 한다.

 

작가는 전시의 실체와 명칭 사이에서 양심을 지켜야 한다. 예술 행정기관은 전시 유형에 대한 명확한 구분 기준과 경력 등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화랑·전시기획사는 부스전과 개인전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관객에게 혼란을 주지 않아야 한다.

 

평론가와 언론은 이러한 문화적 왜곡을 비판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예술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언어다. 우리가 전시라는 형식을 빌려 세상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그 형식 안에 담긴 용어와 태도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 오늘날 ‘개인전’이라는 명칭은 너무 가볍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개인전은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