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자회견] 경제 논리에 지워진 '피로 물든 천사들'…

- “175명의 생명보다 유가가 더 중요한가”
- “기만과 배신이 낳은 호르무즈의 비극”
- 사찰 거부하는 ‘핵 보유국’ 이스라엘의 모순
- “사전 조율 없는 통항은 불가” 영해 주권 선포 vs 韓 정부‘인도적 조치’로 의미 축소

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2026년 3월 26일, 사이드 쿠제치(Seyed Kouzechi) 주한 이란 대사는 서울 용산구 대사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이번 회견은 단순히 선박의 안전을 확인하는 실무적 자리를 넘어, 전쟁의 참혹한 본질과 국제법적 명분을 두고 한국 정부 및 언론과 벌이는 치열한 외교적 격전지였다.

 

 

기자회견의 식순: 시각적 호소로 시작된 여론전

본격적인 질의응답에 앞서, 주한 이란 대사관 측은 기자들의 시각을 교정하기 위한 사전 행사를 기획했다. 대사관 내부 벽면에는 미군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처참한 현장 사진들이 전시되었고, 이어 '피로 물든 천사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

이 영상에는 미군의 오폭으로 발생한 이른바 '미나브 참사' 현장이 가감 없이 담겼으며, 특히 미나브 여자 초등학교 학생 175명이 희생된 모습과 유가족들의 통곡은 참석한 기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는 전쟁의 본질이 유가 상승이나 공급망 차질 같은 경제적 수치가 아닌, '인도주의적 재앙'에 있음을 강조하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Q&A] 이란 대사의 발언으로 본 사태의 본질

쿠제치 대사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이란 정부의 논리를 상세히 피력하며, 현재의 긴장 상황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만’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했다.

 

한국 선박 통항 및 안전 보장

  • 기자 질문: 한국 선박의 안전한 통항은 보장되는가? 사전 정보를 요구한 것은 예외적 통과를 의미하나?
  • 쿠제치 대사의 답변: "이란은 한국을 비적대국으로 간주하며, 한국이 미국의 제제에 동참하지 않은 점에 감사한다. 하지만 현재는 전쟁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면 무조건 이란 정부와의 사전 조율과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사전 조율 없는 통항은 위험하므로 미국을 신뢰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미국의 평화안 및 휴전에 대한 입장

  • 기자 질문: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안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 쿠제치 대사의 답변: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기습 공습을 받은 것은 지난 2년간의 대화가 배신이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의 15가지 조건은 불법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평화적 핵 활동 권리를 포기하라는 요구는 수용 불가능하며, 휴전 언급 역시 재공격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전술일 뿐이다."

 

제재의 당위성과 가짜 뉴스 일축

  • 기자 질문: 미국과 관련한 화물을 실은 선박 제재가 정당한가? 블랙리스트 소문은 사실인가?
  • 쿠제치 대사의 답변: "우리 국민과 인프라가 폭격받는 상황에서 미군 기업들이 페르시아만 내에서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하도록 두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미국·이스라엘과 관련된 모든 것은 이란의 제재 대상이며 이는 이란의 방어적 권리다. 온라인에 유포된 통행료 부과나 블랙리스트 명단은 들어본 적도 없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날 질의응답은 단순한 현안 설명을 넘어, 이번 사태를 규정하는 이란 측의 인식 구조를 집약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쿠제치 대사는 해협 통항 문제를 ‘안전 관리’가 아닌 주권과 통제권의 문제로 재정의하는 한편,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기만과 불법성’이라는 틀로 일관되게 규정했다. 동시에 경제 제재와 해상 통제 조치를 방어적 권리로 정당화하며, 국제사회의 시각 전환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결국 이번 발언은 개별 사안에 대한 답변을 넘어, 현재의 긴장을 둘러싼 법적 정당성, 군사적 대응, 그리고 서사 경쟁이 결합된 이란의 전략적 입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둘러싼 한·이란 간 인식 차이는 ‘사전 정보 제공’의 성격 규정에서부터 뚜렷하게 갈린다.

이란 대사관은 해당 조치를 선박 통항 허가를 위한 필수적인 사전 절차로 규정하며, 이를 통해 영해 및 해협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통과 역시 개별 국가와의 외교적 합의를 전제로, 이후 이란 군 당국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관리된다는 설명이다.

 

반면 대한민국 외교부는 같은 날 정례브리핑에서 이를 선원 보호와 안전 확보를 위한 인도적 조치로 이해하고 설명했다.

국제법상 항해의 자유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해결 방식 역시 양자 협의가 아닌, 미국과 이란 간 협상국제해사기구(IMO)를 포함한 다자적 공조 체계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동일한 조치를 두고도 ‘통제권 행사’와 ‘안전 관리’라는 상이한 프레임이 병존하면서, 향후 해협 운용을 둘러싼 외교적 긴장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 보도의 경제 편중을 겨냥한 공개적 유감표시

쿠제치 대사는 기자회견 중 질문을 던지는 한국 기자들에게 이례적으로 깊은 유감을 표했다. 질문의 대다수가 유가 상승, 공급망 차질, 통행료 등 한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본질의 왜곡: 쿠제치 대사는 한국 언론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블랙리스트’나 통행료 부과 논란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사이, 이란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민간인 피해와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조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쟁 보도의 초점이 본질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주장이다.
  • 인도주의적 관점의 결여: 이어 전쟁의 원인과 민간인 희생보다 공급망 안정성과 경제적 파장에 우선순위를 두는 보도 경향에 대해, 전쟁의 실상을 축소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

 

 

대사가 강조한 핵심 메시지: “미나브의 비극을 직시해야”

쿠제치 대사는 회견 말미에서 국제사회와 한국 국민이 주목해야 할 지점으로 ‘전쟁의 인도주의적 현실’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회견 서두에 상영된 미나브 지역 초등학교 공습 사례를 다시 언급하며, 다수의 어린 학생이 희생된 사건을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초래한 결과로 규정했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핵 정책을 둘러싼 국제적 이중 기준 문제도 제기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이 국제적 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이란의 평화적 핵 활동을 문제 삼아 군사적 압박의 명분으로 활용하는 것은 국제 규범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의 핵 정책과 이를 둘러싼 국제적 논란에 대한 쿠제치 대사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스라엘은 상당한 수준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공식 사찰을 수용하지 않은 채, 핵확산금지조약 체제 밖에서 핵 능력을 유지하며 국제 규범의 감시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란IAEA 회원국으로서 규정에 따른 평화적 핵 활동 권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국의 핵 프로그램이 군사적 목적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를 근거로 군사적 압박과 공습을 감행하는 것은 정당성이 결여된 행위라고 반박한다. 특히 규범을 따르지 않는 핵 보유국(이스라엘)이 오히려 규범을 준수하는 국가(이란)를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는 것은 국제법적·도덕적 이중잣대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이란은 또한 중재국(오만)과 약 1년간 이어온 대화 국면 속에서 공습이 단행된 점을 들어, 협상 자체가 군사 행동을 위한 시간 벌기이자 기만적 전술이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러한 군사 작전이 미나브 지역 초등학교 공습을 포함한 대규모 민간인 피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해당 공격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비인도적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하고 있다.

 

쿠제치 대사는 나아가 이번 충돌이 단기적 군사 충돌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쟁 이후에도 기존 질서로의 복귀는 어려울 것이며, 유사한 충돌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외부 군사 개입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지역 관리 원칙과 안전 보장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호르무즈 해협이 단순한 에너지 수송로를 넘어, 생명과 국가 주권이 교차하는 인도주의적 긴장의 공간임을 재확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부가 인도적 명분과 경제적 실리를 병행하려는 접근을 취하는 가운데, 이란이 요구하는 ‘사전 조율’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신중한 외교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미나브 지역 어린이 희생 사건과 전쟁 희생자 2만명과 관련해, 이를 국제 유가 등 경제적 변수 중심으로 다루는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쿠제치 대사의 비판은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성찰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