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길주 외교부 출입 기자 | 2026년 4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진행 중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대 이스라엘 간 ‘집단학살’ 재판이 판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이 잇따라 재판 개입을 선언하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국가 간 분쟁을 넘어 국제 질서의 기준을 재정의하는 ‘법적 충돌의 장’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공개한 보도자료와 사건 기록에 따르면, 지난 3월 12일 나미비아·미국·헝가리·피지 등 4개국이 규정 제63조에 따라 개입 선언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본 재판에 공식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힌 국가는 총 22개국으로 늘어났다. 하루 앞서 네덜란드와 아이슬란드가 개입에 합류한 점까지 감안하면, 유럽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개입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법정으로 확장된 전선”… 협약 해석 둘러싼 집단 충돌
이번 개입은 모두 ‘집단학살 방지 및 처벌에 관한 협약’ 당사국 자격에 따른 것으로, 각국은 해당 협약의 해석 문제에 대해 직접 의견을 제출하게 된다. 재판소의 최종 판단은 개입 국가에도 동일한 법적 구속력을 갖는 만큼, 이번 재판은 사실상 집단학살의 국제적 정의를 확정하는 절차로 평가된다.
미국 개입, 판세 흔드는 변수… “의도 입증 기준 강화”
가장 큰 파장은 미국의 개입이다.
미국은 제출한 선언서를 통해 집단학살 성립 요건으로서 ‘의도(intent)’의 엄격한 입증을 강조하며, 단순한 민간인 피해나 기반 시설 파괴만으로는 집단학살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특히 미국은 “다른 어떤 해석도 불가능한 유일한 합리적 추론”이 존재할 때에만 집단학살 의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협약의 확장 해석을 견제하고, 법적 기준을 보수적으로 유지하려는 접근으로 풀이된다.
국제사회 분열… ‘의도’ 중심 vs ‘결과’ 중심 충돌
각국의 법적 입장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나미비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는 공격의 규모와 지속성, 기아 유발 등 결과적 피해를 근거로 집단학살 의도를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피지 등은 무장단체의 ‘인간 방패’ 전략과 도시전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집단학살 의도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로 정의된다.
법적 공방과 별개로, 가자지구 현장에서 제기된 구체적 전쟁 범죄 사례들은 재판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이스라엘 지도부를 겨냥해 발부한 체포영장에서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사용’한 행위를 핵심 혐의로 명시했다. 구호 물자 차단, 필수 인프라 붕괴는 민간인의 생존권 침해로 직결되며, 국제인도법 위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엔과 주요 인권단체 보고에 따르면, 의료시설, 피란민 보호구역, 주거지를 향한 공격이 반복되면서 민간인 보호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광범위한 주거지 파괴는 단순한 전투 피해를 넘어 장기적 거주 불가능 상태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언론인 사망, 국제기구 차량 피격 사례는 정보 전달 체계와 인도적 지원 네트워크가 동시에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분쟁 지역 내 기본적 인도주의 질서 붕괴 우려를 키우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가자 전쟁 발발 이후 220명 이상 언론인 사망이 보고된 가운데, 알자지라는 자사 기자의 드론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진실 보도를 차단하기 위한 표적 공격”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성명을 통해 언론인 살해를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ICC의 추가 조사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번 재판은 단순한 국가 책임 규명을 넘어, 국제법의 핵심 기준을 재정립하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상반된 입장을 가진 국가들이 동시에 개입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사실상 국제 규범 형성의 중심 무대로 부상했다.
이번 판결은 집단학살의 정의, ‘의도’ 입증 기준, 전쟁범죄 판단 범위 등 국제법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진행 중인 이 재판은 국제 질서의 기준선을 다시 설정하는 과정 그 자체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