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저널 (Diplomacy Journal) 이세훈 논설위원 | FESTINA(빠르게), LENTE(신중하게)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라틴어가 바로 “FESTINA LENTE”입니다.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소 어감이 다르기는 하지만 “천천히, 신중하게 서두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적당하리라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빠른 시간안에 질주하기 보다는 목표를 향한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우리 속담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뜻과 조금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 있어 서두름과 타인과의 비교는 언제나 낭패를 가져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일을 잘하고 싶다면,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있을 것을 굳게 믿고 기초부터 차분히 튼튼하게 다져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들의 성공한 외면만 바라보고 질주하려 하는데, 이 경우, 성공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대부분 간과한 채 속단하여 노력하지도 않고,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자신의 탓으로 삼습니다.
“노자” 41장에 나오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고어와 가르침이 있습니다.
“매우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바르게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가장 평탄한 도는 굽은 것 같고, 가장 높은 덕은 낮은 것 같다.
몹시 흰빛은 검은 것 같고, 매우 넓은 덕은 한쪽이 이지러진 것 같다. 아주 건실한 도는 빈약한 것 같고, 매우 질박한 도는 어리석은 것 같다.” 그러므로,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대기만성).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 우리는 늘 희망 섞인 언어적 표현으로 우리의 삶을 대기만성이라 칭하며 조급함이나 실패한 이후에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미래를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꿈이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표현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 다 이루지 못한 일들이 있어도 굳이 자신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목표가 정당한 것이라면 다시 시작하면 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완벽한 기초부터 더 튼튼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기억하며 FESTINA, LENTE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완성시킴에 있어서는 신중함, 서두름으로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불가에서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이라는 표현으로 인간의 유한한 삶과 우주 삼라만상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은 불교의 시간관인 사겁(四劫)을 표현하는 말로 성겁(成劫), 주겁(住劫), 괴겁(壞劫), 공겁(空劫)을 줄여서 쓰는 말입니다. 이 말은 불교에서 우주가 시간적으로 무한하여 무시무종(無始無終)인 가운데 생성소멸 변화하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겁(四劫)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줄여 우리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고 말합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겁(成劫)은 기세간과 유정세간에 형성되는 시기를 말하는데, 통상 20소겁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성겁(成劫) 다음에, 주겁(住劫)의 시대가 오게 되는데, 주겁(住劫)의 경우에도 20소겁이 소요되며 기세간은 별 변동이 없지만 유정의 과보에는 많은 변동이 있다고 봅니다.
산스크리트 “구사론”에 의하면 인간들은 처음에는 빛을 발하고 하늘을 날 수도 있으며 수명도 8만세까지 장수한다고 합니다. 인간 수명은 8만세에서 100년에 한 살씩 줄어 10세에 이르는 시간을 “소겁”이라 하고, 다시 10세에서 100년에 한 살씩 늘어 8만세에 이르는 시간을 “중겁”이라 합니다.
좋은 맛에 탐닉하고, 나쁜 마음들로 인해 악업이 심해져 수명이 10세로 짧아지게 된 것이며, 사고, 질병 등의 삼재(三災)가 발생하여 많은 인간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 수명의 기복이 연속된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주겁(住劫)의 기간 동안 20번을 반복합니다.
괴겁(壞劫)은 그 뒤의 세계로 파괴되어 가는 시대를 통칭합니다. 이 시대 역시 20소겁이 소요됩니다. 이때는 먼저 유정세간이 파괴되는데 19소겁이 소요되고 화, 수, 풍의 삼재가 발생하여 세계는 천지사방으로 모조리 흩어져 버리게 된다 합니다.
괴겁(壞劫)의 시대가 지나면 허공만이 존재하는 공겁(空劫)의 시대가 되는데 이 기간에도 20소겁이 흘러갑니다. 공겁(空劫) 다음에는 다시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 성, 주, 괴, 공이 반복되게 되므로 이 세계가 끝없이 생성, 소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인간의 세계도 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므로 어찌 보면 FESTINA, LENTE를 반복하는 삶도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큰 의미는 없는 인간적 소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세계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기에 언제나 노력해 가면서 자신의 삶을 발전시켜 나가야만 합니다.
빌 게이츠가 말하기를 ‘나는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이라 그는 말하면서 “Change’의 g를 c로 바꾸면 "Chance"가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변화 속에는 반드시 기회가 숨어있습니다.” 꿈을 이룬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여 빠른 시간 안에 꿈을 이루겠다고 서둘러서는 결코 안 됩니다.
나를 완성하는 것에 대해 조바심을 내지 말고 천천히 기초부터 다져가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누구든 변화할 수 있는 변곡점에 서 있을 때 변화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FESTINA, LENTE”를 좀더 철학적인 뜻으로 옮기면 “신중한 서두름”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승리를 하게 되는데, 그 전쟁의 단초와 명분이 됐던 노예 해방의 문제를 언제, 어떻게 해결할지를 묻는 질문에 링컨은 고대의 철인이자 정치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려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FESTINA, LENTE” 신중하면서도 서두르겠다는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또한, “FESTINA, LENTE”라는 말은 고대 연금술사들의 좌우명이었다고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하는 연금술은 헬레니즘 시대의 세계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크게 발달하게 되는데 당대의 주류 학문이었고 과학이었습니다.
이는 여러 신비주의와 결합해 정신세계의 확장을 도모했고, 무엇보다 금을 만들겠다고 하는 화학적인 실험 그 자체에 의해 자연과학 발달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아랍어에서 기원한 연금술(alchemy)이라는 단어는 오늘날에도 알칼리, 알코올, 나트륨 등으로 남아있으며, 무엇보다 화학(Chemistry)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도의 지적체계를 가진 이 학문이 연금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철학자이자 자연과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연금술이 인류사에 끼친 공헌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연금술은 아마도 아들에게 자신의 포도원 어딘 가에 금을 묻어두었다고 말하는 사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은 땅을 팔 경우, 금을 발견하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포도 뿌리를 덮고 있던 흙무더기를 헤치므로 풍성한 포도 수확을 이룰 수 있었던 것과 비교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합니다.
연금술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금속인 금을 인간의 지식으로 직접 만들겠다고 하는 자연과학적 실험의 세계지만 그 궁극적 목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리고 어쩌면 가능하다고 믿었던 그 성취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지극히 고양된 상태로 만들고, 현세를 초월한 상태로 만드므로,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뿐인 인간이라는 유한한 육체가 영원불멸의 초월적 상태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열망의 세계였습니다.
비록 실제로 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종류의 실험과정은 종교인들이 수행하는 바와 다를 게 없었으며, 그에 따라 나날의 생활을 엄격하고 신중하게 했다는 점에서 제도 종교의 관습적 행위보다 훨씬 더 엄숙하고 고결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금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감각 경험으로 인지 가능한 기존의 세계에 대해 완벽히 이해했음을 뜻하는 것이며, 어떤 점에서는 신의 영역인 “창조”의 반열에 도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세 이후 주류 종교에서 연금술을 배척한 것은 이런 측면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의지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를 “창조” 하려는 연금술사들의 좌우명이 바로 “FESTINA LENTE”였습니다. 기존에 축적된 재료의 성질 분석과 그 배합 비율과 제련과정을 답습하거나, 때로는 모조리 뒤집어 엎어 보기도 하였지만 금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시도합니다. 나날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가며, 절대적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일상생활을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수도사처럼 단순화하고, 모든 육체적 움직임을 연금과정에 몰입하게 되는 "신중함"을 보유하게 됩니다.
장구한 인류사의 과정으로 보면 번번이 실패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운명적으로 금 제련이라는 신성한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순간은 절대 자주 오지 않습니다. 언제 올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바야흐로 지금 금이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한 직관적인 판단이 내려지면 그때부터 연금술사는 온 힘을 다해 서두를 것입니다. 오로지 이 한순간을 위해 거의 평생 동안 신중하게 연구하고 실험하며 살아온 일입니다.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순간을 위해 평생의 지식과 노력과 열망을 한꺼번에 응집해 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FESTINA LENTE”,즉, “신중한 서두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조급함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한국인들에게는 “바쁘다 바뻐”라는 언어적 표현과 “빨리빨리”라는 행동지침이 이미 내재화된 지 오랩니다.
휴식시간을 주어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합니다. 쉴 줄 모르는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인지 모릅니다. 이는 업무의 비효율성으로 나타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스스로에게 위 해를 가하는 현실에 직면해 세계 최고의 자살율을 기록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부도, 기업도 모두 바쁩니다. 세계최고가 되어야 하는 슬로건안에서 늘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중세의 연금술사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FESTINA LENTE”, 즉, “신중한 서두름”의 삶을 살았듯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FESTINA LENTE”가 우리 삶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논설위원 이세훈 (경제학 박사)